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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대 노모, 70대 북쪽 아들이 보여준 남편 사진에 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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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대 노모, 70대 북쪽 아들이 보여준 남편 사진에 통곡

입력
2018.08.20 21:23
수정
2018.08.21 11:1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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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10개월 만에 금강산서 행사 재개

남측 방문단 197명 2박3일 일정 시작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북측 아들 리상철 씨와 만나 안부를 묻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북측 아들 리상철 씨와 만나 안부를 묻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상철아.”

이금섬(92)씨는 자신과 꼭 닮은 북쪽의 아들 리상철(71)씨를 보자마자 이름을 외치며 목놓아 울었다. 다시 헤어질세라 아들의 온몸을 꼭 끌어 안자, 상철씨도 아버지 사진을 보여주며 “아버지 모습입니다. 어머니”라며 오열했다.

전쟁 통에 가족들과 피난길에 올랐다가 남편, 아들과 헤어졌다는 이씨는 단체상봉 2시간 내내 아들의 두 손을 꼭 붙잡은 채 대화를 이어갔다. “애들은 몇이나 뒀니?” “아들은 있니?” 묻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다시 가라 앉기를 반복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0일 금강산에서 열렸다. 4ㆍ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정상이 8ㆍ15를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자고 합의한 데 따른 것으로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이다. 남쪽 이산가족 방문단(89명)과 이들과 동행한 가족 등 197명은 이날 오후 3시 금강산호텔에서의 단체 상봉으로 2박 3일 일정을 시작했다. 남한에도 익숙한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가 울려 퍼지던 2층 연회장은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이 시작되며 탄식과 울음으로 가득 찼다.

분홍색과 민트색 한복을 각각 곱게 차려 입은 채 기다리던 북녘의 동생 문영숙(79)ㆍ광숙(65)씨를 발견한 현숙(91)씨는 71년 만의 재회가 믿기 어려운 듯했다. 현숙씨는 “왜 이렇게 늙었냐, 어렸을 때 모습이 많아 사라졌네”라고 애써 담담한 미소로 말을 건네다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평북 벽동군 출신인 현숙씨는 스무 살이던 1947년 결혼과 함께 남쪽으로 이주해, 그 뒤로는 한번도 가족을 보지 못했다. “엄마는 (너희가) 몇 살 때 돌아가셨니?” 7남매 중 맏이였던 현숙씨는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대화하기 위해 동생에게 거의 매달린 채로 질문을 쏟아냈다.

머릿속으론 셀 수 없이 그렸던 만남이었으나, 기억 속 가족과 눈 앞의 가족은 많이 달랐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인적사항을 묻고, 각자 가져온 사진을 대조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맞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본인이 직접 이름을 지어줬다는 북쪽의 막냇동생 조정환(68)씨를 만나 한참을 울던 조정일(87)씨도 동생이 준비해온 사진을 꺼내 보이자 그제야 웃음을 보이며 사진 속 가족들을 보며 “나랑 닮았잖아”라고 말했다.

남측 김혜자(75)씨는 남동생에게 5분가량 이것저것 질문을 한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진짜 맞네”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이 준비해온 사진을 보여주자 “엄마 맞다, 아이고 아버지”라며 “(동생이) 아닐까 봐 걱정하면서 왔는데 진짜네”라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물론 수십년 세월 떨어져 있었어도 꼭 닮은 외모가 어디 간 것은 아니었다. 북쪽에 사는 동생 김순옥(81)씨가 오빠 병오(88)씨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혈육은 어디 못 가. 오빠랑 나랑 정말 똑같이 생겼다”라고 하자, 병오씨는 남쪽의 취재진을 향해 “정말, 정말. 기자 양반, 우리 정말 닮았죠?”라고 되물었다. 의사가 됐다는 순옥씨는 “오빠, 통일 돼서 단 1분이라도 같이 살다 죽자”며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한신자(99·오른쪽)씨가 북측의 딸들 김경실(72)·경영(71)씨 만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한신자(99·오른쪽)씨가 북측의 딸들 김경실(72)·경영(71)씨 만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시간의 단체상봉에 이어 오후 7시 17분부터는 북측이 주최한 환영만찬이 2시간가량 진행됐다. 가족마다 차이는 있지만 정전협정을 맺은 1953년을 기준으로 하면 65년 만에 처음으로 한 식탁에 마주 앉는 순간이었다. 북측에선 박용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남측에선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도 참석, 건배사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사랑과 평화’를 각각 외쳤다.

만찬 메뉴로는 닭튀김, 소고기 다짐구이, 돼지고기 완자탕 등이 나왔고, 대동강 맥주 등 주류도 테이블에 올랐다. 술이 겸해지자 어색함이나 긴장감도 한층 누그러졌다. 김한일(91)씨가 여동생 영화(76)씨에게 ‘맥주는 잘 마시냐’고 묻자, 동생은 ‘잘 안 먹는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맛있다”며 음식을 권하고, 먹여주는 모습도 테이블 곳곳에서 포착됐다.

이산가족들은 22일까지 2박 3일간 6차례에 걸쳐 총 11시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다. 둘째 날인 21일에는 호텔 객실에서 개별 상봉을 하고, 이어 1시간 동안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가족끼리만 식사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작별 상봉과 단체 점심 후 귀환한다.

20~22일 북측 주최로 열리는 1회차 행사가 끝나면 24~26일에는 남측 주최로 2회차 행사가 같은 방식으로 열린다. 2회차 행사에서는 북측 이산가족(83명)과 동행 가족 등 337명이 남측의 가족을 같은 방식으로 상봉한다.

금강산=공동취재단ㆍ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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