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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밤엔 말러를 들었다, 첫 책은 당연히 말러였다

입력
2015.07.2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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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없음.

2005년 5월 20일 도서출판 마티는 첫 책을 펴냈다. 첫 책을 출간하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출판등록을 하고 사업자등록증을 받고, 솔직히 이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헷갈려 구청과 세무서를 쓸데없이 여러 번 오간 다음, 위탁거래와 현매, 매절 거래를 분간하게 된 뒤, 교보문고 알라딘 서울문고(현 반디앤루니스)를 비롯해 몇몇 대형 서점들과 거래를 맺기 위해 돌아다닌 후…, 캄캄한 밤이 되면 늘상 그랬듯 말러 3번 아니면 7번을 들었다. 몇 번이든 간에 아무튼 말러를 들었다.

번스타인, 쿠벨리크, 텐슈테트, 솔티보다는 역시나 아바도파였는데 말러 대폭발 현상을 이끌어냈던 말러리아 동호회의 분위기에 힘입어 적금을 헐어 루체른을 다녀오고 난 뒤에는 더욱 아바도님의 신도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별다른 갈등 없이 음반을 장착했다.

첫 책을 낼 때 나는 굳은 결심이나 포부, 간절한 염원을 묻어두지 않았다. 꼭 10년을 채운 오늘에 와서 돌이켜보니, 그건 극악무지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법 행운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평생을 배우며 책을 만들 터인데 처음부터 승부를 거는 매우 도전적인 태도가 외려 지치게 만들지 않았을까, 라고 지금은 위무한다.

출판 편집자에게 첫 책은 (굳이 발행인이 아니더라도) 내가 매일 듣는 음악, 매일 읽는 책, 매일 생각하는 일상의 한 수저를 떠내 독자들에게 "이 맛 어떠세요들?" 하고 선을 보이는 기회이다. 사실 첫 책뿐 아니라 책을 만들고 소개하는 사람은 늘 그렇게 열정에 휩싸인 채 고독한 자리에 앉아 있게 마련 아닌가. 어쨌든 교향곡 연주하기를 한없이 버거워했던 오디오세트를 큰돈 들이지 않고 바꿔보겠다고 밤이면 밤마다 오디오동호회 중고직거래 장터를 눈 빠지게 들여다보던 시절이었으니 마티의 첫 책은 당연히 말러였다.

말러의 제자이자 음악적 소울메이트였던 브루노 발터가 지근에서 지켜보며 기록한 말러 평전. 번역도 김병화 선생께서 선뜻 맡아주셨으니 책 만드는 일이 그저 재미났다. 제목은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2010년 ‘구스타프 말러’로 개정)이라고 붙였다. 이 책은 말러 일상의 에피소드에 집중하기보다 말러가 작곡했던 당시 시대적 변화와 음악적 내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정갈하게 기록했는데 제자의 기억이기에 살가움과 따스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근대를 열어젖혔지만 정작 본인은 마지막 낭만주의자였던, 시대와 불화했던 말러의 열정과 고독이 오늘 새롭게 떠오른다.

한 출판사의 첫 책이 그 뒤에 이어지는 책들과 어떻게 같으면서 깊어지는지, 얼마나 다르게 넓어지는지를 눈여겨보는 것은 애독자의 귀한 취미이리라. 마티는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확실히 전보다 결심이 많아졌다. 사실 이러는 건 별로다. 너무 자주, 너무 열심히 도전하지 않기. 말러를 함께 들으며 동료들과 오늘의 첫 책을 만든다.

정희경·도서출판 마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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