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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작가 소잉카 “절망 않기 위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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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작가 소잉카 “절망 않기 위해 쓴다”

입력
2017.11.05 16: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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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ㆍ나이지리아 공통점으로

“인간 감성에 자연 통합” 꼽아

소잉카 “상상력 경계 넘는 것이

진정한 탐험가의 조건” 강조

4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고은(왼쪽) 시인과 특별 대담을 가진 월레 소잉카는 “고은 선생의 정신세계를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4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고은(왼쪽) 시인과 특별 대담을 가진 월레 소잉카는 “고은 선생의 정신세계를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지금이 20세기 초 같은 ‘문학의 황금기’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문인의 세속적 위상은 밑바닥에 있지만 문학은 항구적으로 별처럼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은)

“문학의 위기라고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상당히 뛰어난 작품들이 여성 작가에 의해 쓰여 지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이 문학에 기대는 건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다. ‘쓴다는 것’에서 정치경제 상황에 무너지지 않겠다는 동인을 찾는 것 같다.”(월레 소잉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문인, 고은(84)과 월레 소잉카(83)가 만났다. 두 사람은 4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 특별 대담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의 공통점과 문학의 위기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시, 소설, 희곡 작가로 활동한 소잉카는 1986년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97년 세계공연예술축제, 2000년 서울국제문학포럼 등 참가를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한 살 터울인 고은과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옥고를 치르고 그 경험을 문학작품으로 남긴 공통점이 있다. 조국 나이지리아의 내전(1967~1970) 중단을 촉구하는 글을 썼다가 22개월간 투옥됐는데, 훗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옥으로부터의 시’를 발표했다. 노벨상 수상 후에도 군사정권에 끝없이 저항하며 미국 영국 프랑스를 오가는 망명 생활을 1999년까지 이어갔다. 2010년 인민민주전선동맹 당 대표로 선출됐다. 올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항의 표시로 미국 영주권을 반납했다. 예술의 역할에서도 현실 참여를 강조한다. 그는 “미술관과 무대, 콘서트홀에서 가둬 놓아도 예술은 예술이지만, 원초적인 수준의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이 사회의 일부가 될 때, 진정한 예술이 되고 위험한 물건이 된다”며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예술의 사명”라고 말했다.

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 참가한 나이지리아 희곡작가 월레 소잉카는 기조강연에서 "시는 권력의 안티 테제이자 경계선의 부정"이라며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작가의 소명을 강조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 참가한 나이지리아 희곡작가 월레 소잉카는 기조강연에서 "시는 권력의 안티 테제이자 경계선의 부정"이라며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작가의 소명을 강조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소잉카는 대담에 앞서 한 기조강연에서도 “시는 권력의 안티 테제이자 경계선의 부정이다. 인간 활동에 반하여 세워지는 사상과 상상력의 경계, 이 경계를 넘는 것이 진정한 탐험가(작가)의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반도 상공 전역에 전쟁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 시점에 최초의 아시아 문학축제가 한국에서 열리는 건 아주 시기적절하다”고 덧붙였다.

기조 강연 후 열린 대담에서 고은 시인은 소잉카의 ‘경계’ 개념을 확장해 설명했다. “‘경계 넘기’는 이미 경계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며 “경계에 대한 반작용, 경계 넘기로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게 인류의 지속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 중 한 가지만 맹신해서는 안 된다. 보편성을 바탕으로 특수성이 나오지만, 서구문학이 늘 (다른 문화권의 문학 작품을 평가하면서) 강조하는 보편성은 한편으로 제국주의적 요소도 있다”고 덧붙였다. “삶의 가치는 보편적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과 이란의 시가 같다면 여기서 굳이 만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소잉카는 대담에서 한국과 나이지리아 문학의 공통점으로 ‘자연’을 꼽았다. “한국 시는 인간의 감성에 자연을 통합시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아프리카 시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경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문학의 영구한 가치를 믿는 한편으로 “시인이 죽으면 행려병자로 처분할 지도 모르는” 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고은 시인과 달리 소잉카는 “굉장히 밝은 미래”를 예측했다. 뛰어난 문학작품이 아프리카에서 다수 출간되는 현실과 나이지리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 보코하람의 출현을 대조시키기도 했다. 그는 “문학 작품이 늘어나는 한편으로 반작용도 있다”며 “문학과 예술이 없어질 거라는 두려움이 만든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아침’을 주제로 2~4일 열린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국제 교류망 구축을 위해 올해 시작했다. 소잉카를 비롯해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콜리나스, 프랑스 파리8대학 명예교수 끌로드 무샤르 등 해외 작가 10인, 현기영 신현림 등 국내 작가 30인이 아시아의 기억, 상처에 대해 이야기했고, 작가로서 가져야 할 태도와 정신을 담은 ‘2017 광주 선언문’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광주=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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