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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입기,읽기] 고급 브랜드 티셔츠 과도한 유행이 불편하다

입력
2017.07.0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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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언젠가부터 고급 브랜드에서 내놓는 티셔츠와 후드, 스웻 셔츠 등 캐주얼 의류가 유행을 이끌고 있다. 고급 의류라고 해서 더운 여름에도 리넨 재킷과 샴브레이 셔츠 같은 점잖은 옷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 최근 들어 캐주얼 의류와 드레스, 슈트 등 사이에서 보이기 시작한 ‘균형’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고급 패션 특유의 복잡하고 엄격한 방식을 전복시키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다. 본격적 전환점은 2005년 리카르도 티시가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들어간 때라고 할 수 있다. 오드리 헵번으로 상징되던 지방시는 티시 영입 이후 스트리트 패션과 고딕 패션을 활용하며 새로운 세대를 겨냥하기 시작했다.

이후 겐조, 베트멍, 구찌 같은 디자이너 하우스가 그런 시도를 이어 받았다. 이제 캐주얼 아이템은 트렌드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라발 그룽, 베르사체, 프라다 등 여러 브랜드가 자극적이고 눈에 확 들어오는 프린트 티셔츠 시리즈를 계속 내놓고 있다.

몇 년 전만해도 티셔츠, 스포츠 양말, 후드, 야구 모자 등 대중적 브랜드가 내놓는 단품 아이템을 하이 패션과 믹스 앤 매치하는 방식이 주로 이야기됐다. 이제 하이 패션 브랜드가 캐주얼 아이템을 직접 선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을 조금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고급 브랜드의 가방, 지갑, 스카프, 넥타이 등은 활용도가 높은 품목이었다. 오랜 기간 착용할 수 있고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기에 돈을 저축해서라도 장만할 만 했다. 그런 아이템은 평범한 회사원의 삶에 작은 즐거움을 주곤 했다. 옷은 달랐다. 함께 입는 옷 전체의 조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 벌 구입한다고 해서 패션이 확 나아지지 않았다. 자주 사 입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많이 팔리는 고급 브랜드 의류는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코트 정도였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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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와 후드가 고급 브랜드 패션쇼 캣워크에 등장한 것은 큰 전환점이었다. 단지 티셔츠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비싼 가격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브랜드의 다른 제품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행에 민감하고 멋을 내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에게 팔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이 등장한 것이다.

엄숙주의를 탈피한 탈권위의 패션이 나쁠 건 없다. 문제는 한 시즌에 선보일 수 있는 컬렉션의 양이 한정된 상황에서 캐주얼 아이템 비중이 너무 높아졌다는 것이다. 또 티셔츠와 후드의 대체재가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데도 사람들이 고급 브랜드를 소비하게 됐다는 것이다.

티셔츠에도 완성도의 차이라는 게 있긴 하다. 지금 유행을 이끄는 비싼 티셔츠나 후드, 스웻 셔츠의 품질은 물론 좋을 것이다. 그러나 소재도 디자인도 저렴한 제품과 크게 다를 건 없다. 티셔츠 가격은 어차피 인쇄하고 프린트하는 글자와 그림, 로고에서 나온다. 더구나 고급 브랜드의 티셔츠 패션은 거리의 옷을 캣워크 위에서 더 비싼 방식으로 코스프레 하는 일에 가깝다.

스트리트 패션을 응용하는 방식은 간소화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얼마 전 출시된 루이 비통과 슈프림의 협업 컬렉션에는 루이 비통의 트렁크와 스트리트 아이템인 스케이트 보드를 결합한 제품이 나왔다. 터무니 없는 조합이었지만, 가볍고 튼튼한 가방이 널려있는 시대에 그런 고풍스러운 물건을 활용하는 방식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시대를 이끄는 최전선의 디자이너 하우스라면 스트리트 패션의 코스프레를 넘어 보다 다채로운 실험과 도전으로 탈권위와 탈엄숙주의라는 시대 흐름을 선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변화를 패션계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낼 지 주목하며 흐름을 바라보는 것 역시 패션을 지켜보는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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