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밀양 화재] “환자 구하려고 불길 뛰어들었다가...” 의료진 3명도 희생

알림

[밀양 화재] “환자 구하려고 불길 뛰어들었다가...” 의료진 3명도 희생

입력
2018.01.26 21:00
4면
0 0

2층서 발견된 간호조무사 김라희씨

출근 10분 만에 화재로 변 당해

남편 “환자들 사명감 갖고 돌봐

아내가 전화해 살려달라 했다”

26일 오전 7시 30분쯤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불이나 소방대원들과 관계자들이 환자들을 이송하고 있다. 밀양=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26일 오전 7시 30분쯤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불이나 소방대원들과 관계자들이 환자들을 이송하고 있다. 밀양=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정말 죽은 거야? 착하게 열심히 살아온 아이인데, 나 이제 어떻게 살아!”

26일 오전 11시45분, 서울역 대합실에서 밀양 세종병원 간호조무사인 딸 김라희(37)씨가 숨졌다는 비보를 들은 최혜진(56)씨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인천에 사는 최씨는 이날 오전 9시쯤 세종병원에서 불이나 8명이 숨졌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무작정 서울역으로 달려갔다. 사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통화 중이었고 불길한 마음에 밀양에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얼마 전 딸이 문자로 보낸 근무표를 보니 26일 오전 근무였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사위로부터 “시신을 확인했다”는 연락을 받은 것. 최씨는 당장 떠나는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동대구역으로 간 뒤 3시간여만에 밀양의 한 장례식장에 도착해 무너지는 가슴으로 딸의 시신을 확인했다.

밀양 세종병원 참사 사망자 37명 가운데 환자를 구조하려다 희생된 의료진도 포함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최씨 딸 김라희 조무사도 그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석경식 세종병원장은 이날 “당시 당직 근무자가 9명 있었고 이 가운데 3명이 구조활동을 하다 사망했다”고 밝혔다. 2층에서 근무하던 김라희씨와 2층 책임간호사 김점자(49)씨, 당직을 서던 의사 민현식(59)씨다.

“현장에서 탈출한 간호사가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고 목격자 증언에 비춰, 김점자씨와 김라희씨 가운데 한 명이 거동이 불편한 환자 구조를 위해 다시 시꺼먼 연기 속으로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병원 입원 환자 80~90%는 70~90대 고령자였다. 부상자 최모(63)씨는 “3층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화재 당시 의사와 간호사가 올라와 도망치라고 외치고 다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상자 손모(39)씨도 “의사와 간호사 모두 처음부터 환자들을 구하러 다녔다”고 밝혔다.

김라희씨 남편 김모(37)씨는 “평소 아내가 ‘돈이 아니라 사명감을 갖고 환자를 돌봐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제천 화재 참사를 보면서도 ‘빠른 시간 내에 사람을 구조하지 않으면 다 죽으니 골든타임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출근 10여분 만에 화재가 발생해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남편 김씨는 “아내가 7시쯤 출근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와서 ‘살려달라’고 했다”며 “조금만 늦게 출근했더라도 변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흐느꼈다. 김점자씨 역시 출근 10분 만에 화를 당했다. 동생(46)은 “홀어머니를 모시는 누나는 일과 가족밖에 모르던 사람”이라며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었다”고 흐느꼈다.

유족 박모(28)씨도 “(이번 화재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로부터 의사(민씨) 분이 병원 근처에 살면서 환자들을 잘 돌봤고 특히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진료를 받는 환자에게도 따로 연락해 상태를 확인할 정도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에선 시민들도 환자 구조에 발 벗고 나섰다. 병원 인근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이모(61)씨는 불길이 번지는데도 요양병원 4, 5층에 입원한 노인들이 가만히 누워 있는 모습을 자기 집에서 보고 부인과 함께 뛰어나왔다. 이후 이씨는 주민들과 함께 피난용 수직구조대(슬라이드)를 이용,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을 구했다. 직장인 우모(25)씨도 야간 당직 후 퇴근길에 세종병원에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목격하고 바로 옆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 탈출을 도왔다. 우씨는 “요양병원 고층에서 어르신들이 수건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을 보고 슬라이드를 이용해 한 시간 넘게 환자 탈출을 도왔다”고 밝혔다.

밀양=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