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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하고 공유하고, DIY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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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하고 공유하고, DIY하라

입력
2015.07.1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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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든 생명공학이든

모든 지식과 정보·기술들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오픈

첨단 바이오까지 DIY 시대, 새 생명체 만들어내는 경연대회도

미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매년 가을 주최하는 바이오해커 교육행사인 아이젬(iGEM) 2014 참가자들. 생명공학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이 행사에 지난해 다양한 전공의 2,300여명이 실력을 겨뤘다. 아이젬 홈페이지(www.igem.org) 제공
미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매년 가을 주최하는 바이오해커 교육행사인 아이젬(iGEM) 2014 참가자들. 생명공학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이 행사에 지난해 다양한 전공의 2,300여명이 실력을 겨뤘다. 아이젬 홈페이지(www.igem.org) 제공

DIY(Do It Yourself)라고 하면 흔히 가정용 가구나 가전제품, 장난감 등을 직접 조립하는 것을 떠올린다. 이게 유행한 지도 한참 됐다. 만드는 재미에 빠진 어른들의 즐거운 취미 생활로 인기다. 이 소박한 활동이 전문가들의 영역, 첨단 생명공학까지 파고 들고 있다. 디자이너가 하던 디자인을 아마추어가 하고, 일반인이 DNA 생체정보를 활용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기술이 진보하자 디자인이든 생명공학이든 누구도 독점할 수 없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모든 지식과 정보, 기술의 공개와 공유가 이를 가능케하는 바탕이자 여기에 동참하는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게 어떤 미래를 가져올 것인지를 신간 ‘오픈 디자인’과 ‘바이오해커가 온다’에서 확인 또는 가늠할 수 있다.

‘오픈 디자인’은 오픈 디자인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여러 디자이너와 개발자, 사회운동가가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원서는 2011년 나왔다. 오픈 디자인의 개념과 현황, 전망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책으로는 전세계에서 거의 처음이라 낯선 용어와 사례가 수두룩하지만,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대안사회와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필독할 만한 책이다.

오픈 디자인 바스 판 아벌 등 지음, 배수현 이현아 옮김 안그라픽스 발행367쪽, 3만원
오픈 디자인 바스 판 아벌 등 지음, 배수현 이현아 옮김 안그라픽스 발행367쪽, 3만원

오픈 디자인의 핵심은 개방성과 접근성이다. 디자이너는 인터넷 저장소에 디자인 청사진을 올리고, 이용자는 이를 다운로드해서 자기에게 맞게 제품을 제작한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크고 작은 활동이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간단하게는 조립식 가구로 유명한 이케아 제품을 사서 이케아 매뉴얼이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형해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쓰는 이케아 해커부터 거의 모든 것을 누구나 집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게 해줄 신통방통한 장비 3D 프린터의 설계까지 다양한 사례를 이 책은 소개한다. 네덜란드에 등장한 인스트럭터블 레스토랑은 세계 최초의 오픈소스 레스토랑이다. 이 식당은 의자 등 인테리어부터 조리법까지 전부 회원들이 공유해서 온라인에 공개한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쓸 수 있게 비용을 낮춘 의족과 휴대폰 등에도 오픈 디자인이 적용되고 있다. 일반인들의 참여와 협력으로 제품이 개발되고 진화를 거듭한다. 이용자는 더 이상 디자이너가 설계한 제품을 그대로 갖다 쓰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다.

네덜란드에 문을 연 인스트럭터블 레스토랑. 요리 레시피부터 인테리어까지 회원들이 개발하고 공유한 것으로만 이뤄져 있다. 사진 Arne Kuilman 제공
네덜란드에 문을 연 인스트럭터블 레스토랑. 요리 레시피부터 인테리어까지 회원들이 개발하고 공유한 것으로만 이뤄져 있다. 사진 Arne Kuilman 제공

이쯤에서 드는 의문. 디자이너가 더 이상 우월하지 않다면, 자기가 만든 디자인에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이제 디자이너의 위상과 역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디자인 도용 같은 무임승차가 빈발하지 않을까. 오픈 디자인은 디자이너나 기업으로서는 손해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게 이 책의 판단이다. 지나치게 엄격한 저작권법이 공유를 가로막아 생기는 폐해가 더 크며, 일정한 조건 아래서 공유를 허락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더 낫다고 주장한다. 천부적 재능을 지닌 소수에게만 의존하는 ‘닫힌 창의성’을 넘어, 누구나 자유롭게 리믹스와 재창작을 통해 창조적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는 ‘열린 창의성’이 오픈 디자인 시대를 이끈다. 자원 고갈 등 지구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오픈 디자인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오픈 디자인은 기존의 산업과 경제 시스템을 뒤흔들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바이오해커가 온다 김훈기 지음 글항아리 발행, 212쪽, 1만3,000원
바이오해커가 온다 김훈기 지음 글항아리 발행, 212쪽, 1만3,000원

‘오픈 디자인’이 소개하는 사례와 주장이 급진적이지만 신선하다고 느끼는 독자라도 ‘바이오해커가 온다’를 읽으면 충격 어쩌면 멘붕을 겪을 것 같다. “전세계 누구든 몇 달러만 있으면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집에 실험실을 차려놓고 유전자 변형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바이오해커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지식 장비 자금 등의 조건과 확보 현황, 이를 바탕으로 진행 중인 여러 프로젝트-예를 들면 발광식물 만들기, 가정에서 치료용 백신 제조하기, 3D 프린터로 제조하는 인체 장기 등-를 두루 소개한 이 책은 바이오해킹에 관한 국내 첫 보고서다.

바이오해킹의 기반 역시 DNA 생체정보를 포함한 모든 자원의 공개와 공유다. 생명공학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심층 정보를 쌓아가는 웹사이트가 날로 늘고, 아마추어로 여기에 참여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실험 장비는 생각보다 싸서 수백만원이면 된다. 중고를 구입하거나 집에 있는 물건을 활용할 수 있다. 웹카메라를 개조해 현미경을 만들고, 믹서나 전동기의 회전 부분을 활용해 원심분리기로 쓰고, 미생물 샘플 보관용 밀폐용기는 지퍼백으로 대신하는 식이다. 복잡한 실험장비의 설계도를 포함해 필요한 정보와 지식과 기술, 실험 성과물은 전부 인터넷을 기반으로 공유한다.

바이오해커는 전문가들만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생명공학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첨단 바이오DIY 로 바꿔버린다. 생명의 설계도인 DNA 정보를 기본으로 한 생체정보를 ‘알아낸’다음 이를 ‘변형’해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는 뜻에서 ‘해킹’이지만 ‘생명공학의 민주적 사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 바이오해커의 주장이다. 이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대학, 정부, 기업 연구실에서 행해지는 ‘빅 사이언스’에 반대하며 누구나 자기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스몰 사이언스’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저가의 실험장비와 규격화한 프로토콜을 개발하는 것도 이들의 활동 중 하나다.

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시작한 아이젬(iGEM)대회는 생명공학을 활용해 새로운 생명체(주로 미생물)를 만들어내는 경연대회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대학생이며 전공이 다양하다. 올해부터는 고등학생도 참가한다. 지난해의 경우 전세계에서 245개팀 2,300여명이 참가했고, 9월 말 열리는 올해 행사에는 더 많은 280개팀이 참가한다.

바이오해커들이 활약하는 세상에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생명윤리에 대한 근본적 질문

뿐 아니라 바이오해킹 성과를 특허 등으로 상업화하려는 압력도 예상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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