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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네가 희망이다, 고맙다 순둥아”… 포항 여진 와중에 새생명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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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네가 희망이다, 고맙다 순둥아”… 포항 여진 와중에 새생명 태어나

입력
2017.11.22 12: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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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흥해체육관 대피했던 산모

22일 오전 3㎏ 건강한 딸 출산

부모 “세면도구만 챙겨 집 나와…

힘든 생활 잘 견딘 아기 대견해”

만삭 산모 대피소에서도 배려

“퇴원 후 막막하지만 감격스러워”

지진으로 엄마 배속에서 포항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으로 대피했던 아기가 몸무게 3㎏의 건강한 상태로 태어나 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지진으로 엄마 배속에서 포항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으로 대피했던 아기가 몸무게 3㎏의 건강한 상태로 태어나 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흥해체육관 대피했던 산모

22일 오전 3㎏ 건강한 딸 출산

부모 “세면도구만 챙겨 집 나와

힘든 상황 잘 견딘 아기 대견해”

만삭 산모 대피소에서도 배려

“퇴원 후 막막하지만 감격스러워”

경북 포항지진으로 엄마 배속에서 포항 흥해실내체육관으로 대피했던 여자 아기 순둥이(태명)가 몸무게 3㎏의 건강한 모습으로 바깥 세상에 나왔다. 순둥이가 제왕절개 수술로 엄마 배속을 나온 시각은 22일 오전 9시49분. 여느 아기들처럼 바로 울지 않아 의료진과 아빠 임경덕(36)씨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산소호흡기까지 달았으나 이내 큰 울음을 터뜨렸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신생아실 한편에서 곤히 잠들었다.

임씨는 “대피소 생활로 배속에서도 힘들었을 텐데 건강하게 잘 태어나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며 “동생을 낳아 달라며 기도까지 했던 큰 딸이 더 기뻐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산모 김현옥(33)씨 역시 수술이 잘 마무리돼 병실에 머물고 있다.

김씨는 순둥이를 낳기까지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겼다. 김씨는 RH- 혈액형을 가진 고위험군 임산부로, 다니던 포항여성아이병원 산부인과에서도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 규모 5.4의 포항 지진 때는 출산 예정일을 한 주 앞두고 병원에서 마지막 검사를 받은 뒤 흥해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집 근처에서 남편과 늦은 점심을 먹던 김씨는 ‘쿠쿵’하는 소리와 함께 큰 흔들림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진으로 만삭 부인과 함께 포항 북구 흥해 체육관에 대피 중인 임경덕(37)씨가 건강하게 태어난 둘째 아이를 촬영하고 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지진으로 만삭 부인과 함께 포항 북구 흥해 체육관에 대피 중인 임경덕(37)씨가 건강하게 태어난 둘째 아이를 촬영하고 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김씨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남편을 따라 5층까지 덜덜 떨리는 다리로 계단을 밟았다. 힘들게 올라왔지만 지진으로 뒤틀린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겨우 열고 들어간 집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부엌 찬장에 있던 그릇이 모두 쏟아졌고 거실에 있던 TV와 가족사진도 부서져 있었다. 곧 태어날 아기 방은 큰 딸의 책, 장난감이 나뒹굴고 있었다.

김씨는 “혹시 배속 아이가 놀랄까 괜찮다는 말을 계속하면서 세면도구만 챙겨 집을 빠져 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6세 딸과 만삭의 몸으로 피신한 대피소에서도 잇따른 여진에 여러 번 놀랐다. 하지만 같이 대피한 이웃들이 체육관내 가장 따뜻한 자리를 내주고 구호품과 음식을 갖다 줘 이내 안정을 찾았다. 대피소에서 이틀을 지낸 김씨는 “고위험군의 만삭 임산부가 대피소에 있다”는 사실이 본보(18일자 1면) 등을 통해 알려지며 출산 예정 병원이던 포항여성아이병원으로 몸을 옮겼다. 김씨의 딱한 사정에 포항여성아이병원은 10여 일의 입원비 등을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임씨 부부는 주위 도움으로 지진 대피 중에도 건강하게 딸을 낳았지만 퇴원 후가 더 걱정이다. 이들의 집인 포항 흥해읍 대흥온천맨션은 5.4지진이 발생한 진원지 흥해읍 망천리와 직선으로 불과 1.9㎞ 거리다. 포항시 1차 점검에 ‘사용가능’ 판정을 받았지만 아파트 주민 상당수가 여진 공포에 여전히 대피소 생활 중이다. 더구나 이들 부부는 양가 부모가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고 형제마저 지진으로 피해를 입어 친지의 도움을 받기 힘든 상황이다.

경북 포항지진으로 대피 중 아기를 낳은 김현옥씨의 아파트 현관 문에 X자로 선명한 금이 가 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지진으로 대피 중 아기를 낳은 김현옥씨의 아파트 현관 문에 X자로 선명한 금이 가 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김씨는 “신생아를 데리고 아파트 5층에서 대피하는 상상만도 끔찍해 체육관이나 다른 대피소에서 산후조리를 할까 고민하고 있다”면서 “엄마 아빠를 믿고 세상에 나온 아이를 보니 감격스러우면서도 너무 미안한 마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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