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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건국 정신으로 돌아가자

입력
2015.11.0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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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북서풍이 불어오던 1950년의 봄이었다. 작지만 패기만만한 신생국가가 오랫동안 이어져온 봉건적 위계질서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농지개혁법. 이승만 대통령은 이미 집권 이전인 1948년 3월에 로버트 올리버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일 먼저 농지개혁을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부 수립 1년 반 만에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의 재임기간 이루어낸 최초의 업적이자 최고의 공적이다.

농지개혁법은 사농공상의 차별이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던 사실상의 신분제, 즉 지주와 소작인을 없앴다. 그리고 모두를 자유롭고 평등한 하나의 국민으로 만들었다. 토지개혁은 맹자가 정전제(井田制)를 주장한 이래 이상(理想)사회를 세우려던 숱한 사상가들이 시도했지만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건국 정부의 농지개혁법은 이러했다. 우선 한 농가가 가질 수 있는 농지의 면적을 제한한다. 그 면적을 넘는 나머지 농지는 정부가 구입한다. 정부는 이렇게 구입한 농지를 소작농에게 분배한다. 농민은 분배 받은 땅에서 5년간 일하여 얻은 소출의 30%를 정부에 내야 한다. 그러면 그 땅은 그 농민의 것이 된다. 정부는 그 30%의 소출로 토지구입비를 충당한다. 농지를 임대 또는 위탁하는 과거의 관습은 금지되었다. 이로써 지주의 토지 과점은 해체되고 모든 농민이 자신의 땅을 가진 자영농이 되었다.

농지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토지 소유와 신분 질서만을 바꾼 것이 아니다. 당시 국민 대부분이 농민이었으므로, 농지개혁은 사회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꾼 혁명이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전근대적 봉건사회에서 근대적 국민국가로 빠르게 이행했다. 건국 세대는 이전의 세습 신분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방된 나라는 과거의 왕조를 다시 세우지 않았다. 우리의 시작은 민주공화국이었다. 이것이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다.

요즘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논리는 올바른 역사를 교육시키자는 것이다. 현행 교과서가 역사를 부정적으로 가르친 탓에 자라나는 학생들이 우리나라를 부끄럽게 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농지개혁법을 예로 들면, 우리 학생들은 자기 땅을 갖게 된 농민들이 6ㆍ25 전쟁 때 북한에 맞서 싸웠다는 것, 그래서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는 것, 지주제가 사라졌기 때문에 쉽게 공업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경제발전과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졌다는 것 등을 다 배운다.

청소년들이 우리나라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과서 탓이 아니다. 오늘의 현실이 올바른 역사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건국 이후 반 세기가 지나면서 우리는 다시금 신분제로 돌아가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소수의 건물주들이 도시 상권의 건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곳에 세 들어 사는 상인들은 하루 종일 일해도 그 과실을 갖지 못한다. 열심히 일해서 상권을 키워놓으면 건물주는 임대료를 더욱 올려 받는다. 때로는 법의 허술함을 이용해 상인을 마음대로 내쫓기도 한다. 도대체 임차 상인의 처지가 소작농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지금 우리 국민 6명 중 1명은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절대빈곤자인 한편 어떤 사람은 부동산 임대만으로 상위 1%의 수익을 벌어들인다. 이런 현실은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헌법마저 거스른다.

문제는 교과서가 아니다. 건국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입으로만 이승만을 국부라고 찬양하는 것이 어찌 올바른 역사인가? 국부의 농지개혁을 이어받아 부동산을 개혁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수익 부동산을 제한하고, 나머지 부동산을 땅 없는 사람이 5년간 소득의 30%로 구입하게끔 하는 것이다. 건국 정신으로 돌아가자. 우리의 건국 정신은 신분제를 부수고 나온 자유민주주의였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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