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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 당한 동물 떠나 보내는 할머니의 수레

입력
2016.10.0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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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도 없이 홀로 사는 할머니의 집엔 길에서 죽은 갖가지 동물들이 누워 있다. 할머니는 훼손된 시신들을 정성스레 복원해 조각배에 띄워 강으로 보낸다. 보림 제공
식구도 없이 홀로 사는 할머니의 집엔 길에서 죽은 갖가지 동물들이 누워 있다. 할머니는 훼손된 시신들을 정성스레 복원해 조각배에 띄워 강으로 보낸다. 보림 제공

잘 가, 안녕!

김동수 글, 그림

보림출판사 발행ㆍ46쪽ㆍ1만2,000원

산 것은 결국 죽는다. 그래서 죽음은 모든 생명의 숙제다. 언젠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숙제. 산 자들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다. 그러나 아는 이 아무도 없으며, 설명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살아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하여 우리는 그것을 그저 상상할 뿐이다.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만. 상상의 가장 분명하고 구체적인 매개는 죽은 타자의 몸뚱이-시신이다.

인간의 것이든 동물의 것이든, 식물의 것조차도 죽은 몸뚱이는 불길하다. 썩을 것이기에 추하고 불결하며 두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불길한 상상을 원치 않으므로, 인간은 시신을 오래 방치하지 않는다. 동족의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짧은 애도의 시간을 보낸 뒤 파묻거나 태우거나 바람에 삭힌다. 물에 띄워 보내거나 새에게 먹여 하늘로 올려 보내기도 한다. 그 모든 조치와 절차들은 존엄한 생명, 인간의 시신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한 채 오래도록 방치되는 시신들이 있다.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 위에서, 무심한 차바퀴에 치이고 밟히고, 부서지고 또 으스러지는 동물의 시신들-‘로드킬’의 흔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죽음인 ‘비명횡사’의 동물 버전이며,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뒤의 상태인 ‘유기된 사체’의 동물로 표현된 형상들이다. 우리는 그 처참한 시신들 앞에서 어떤 상상을 해야 하는가. 무슨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어떤 예의를 표해야 하는가.

이 그림책은 그 서글픈 죽음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요, 슬픈 영혼들을 달래는 씻김굿이다. 굿을 베푸는 이는 홀로 사는 할머니. 어느 밤, 강아지 한 마리가 트럭에 치여 죽는다. 할머니가 발견하고 손수레에 실어 집으로 데려간다. 식구도 없이 홀로 사는 집. 거기엔 그렇게 길에서 죽은 갖가지 동물들이 누워 있다. 할머니는 훼손된 시신들을 정성스레 복원한다. 토막 난 뱀 허리를 꿰매어 잇고 다 빠져 버린 부엉이의 깃털을 제자리에 꽂아 준다. 납작해진 개구리가 다시 통통해지도록 만져 주고 내장이 비어져 나온 강아지의 배를 봉합한다. 옆구리 터진 고라니, 꼬리 잘린 족제비가 그렇게 제 모습을 찾는다. 할머니는 그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한 방에 뉘여 하룻밤을 함께 잔다. 그리고 새벽, 할머니는 동물들을 손수레에 싣고 강가 나루터로 간다. 조각배에 그들을 고이 누이고 꽃 장식을 해 준다. 흰 오리들이 조각배를 끌고 강으로 나아간다. 망자들이 건너는 저승의 강일까. 하늘에 발갛게 새벽놀이 물드는데, 한바탕 굿을 베푼 할머니가 손을 흔든다. “잘 가, 안녕!” 곁에는 빈 수레가 놓여 있다. 수레는 다시 시신들로 채워지리라.

로드킬은 속도에 적응 못한 생명들에 가해지는 문명의 폭력이다. 폭력에 희생된 죽음은 처참하다. 허나, 이미 죽은 자에게야 어떤 죽음이든 무슨 의미가 있으랴. 죽음이란 산 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법. 처참한 주검은 처참한 상상을 부른다. 처참한 상상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다. 죽음의 상상이 처참한데 삶이 명랑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로드킬은 인간의 문제다. 그것을 막는 것도, 뒤처리를 하는 것도.

그림책에서는 그 뒤처리를 할머니가 하고 있다. 신산난고 다 겪어 내고, 자신을 소진하며 생명을 키우는 할머니들은 모두, 바리데기다. 할머니가 베푸는 씻김굿은 그래서 더 따뜻하고, 그래서 더 쓸쓸하다. 따뜻하고 쓸쓸한 굿판을 덮으며 죄 없이 죽어간 모든 생명들의 명복을 빈다.

김장성 그림책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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