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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북미정상회담 통역

입력
2018.04.01 17:3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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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한국과 미국은 북핵 해결책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었다. 두 달 전 베이징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개발 포기 약속과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등을 담은 9ㆍ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하지만 미국이 9ㆍ19 직후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북한 자금세탁 창구로 지목, 금융제재를 가하면서 우리와 충돌했다. 정상회담은 양국 간 북핵 엇박자와 갈등 해소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 그러나 뾰족한 해결책은 도출되지 않았다.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 미국 기자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전에 북한에 먼저 원조를 할 용의가 있느냐”고 묻자 부시 대통령은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은 코멘트였다. 그러나 미국 측 통역사는 “경수로가 적절한 시기에 ‘제공’될 것이다”고 통역했다. 초민감 사안인 북핵 이슈에서 ‘검토’와 ‘제공’은 엄청난 차이였다. 언론들은 미국 입장의 변화를 보도했고, 정부는 “통역 잘못”이라며 부랴부랴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 정상회담 통역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외국어 능력 뿐만 아니다. 상대국 역사와 문화, 관습부터 양국 관계와 국민 감정, 외교 현안 등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자국 정상의 언어 습관, 즐겨 사용하는 고사성어나 속담 등을 제대로 파악해야 발언의 의도와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특히 정상이 회담 중 실언을 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침착하게 오해가 없도록 수습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실언대로 통역해도 잘못은 아니지만, 어떤 정부든 정상의 실언이 문제가 되면 “통역 잘못”으로 둘러대기 마련이다.

▦ 예정대로라면 북미정상회담이 5월에 열린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북미 간 담판이다. 역사적 의미가 큰 만큼 회담장의 긴장감과 압박감이 클 것이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언행에 거침이 없는 스타일이다. 통 큰 합의도 가능하지만 말 한마디에 판을 걷어찰 수도 있다. 평소의 거친 언사나 돌출 발언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때문에 어느 때보다 통역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과거 한미 간 정상ㆍ고위급 회담에서 미국 측의 한국어 통역 오역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 것이 목엣가시처럼 걸린다.

황상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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