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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미리 보는 트럼프ㆍ김정은 회담

입력
2018.05.13 18:5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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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자신을 한반도 외교의 큰손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써왔다. 한반도에서 희망의 조짐이 번져 나오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이 가까워질수록 중앙 무대에 선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정된 이벤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트럼프는 전문가의 조언을 듣지도 읽지도 않으려 할 것이다. 상반되는 정보의 숲을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려 할 수 있다.

트럼프는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브리핑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의견은 가장 최근에 이야기를 나눈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한다. 게다가 트럼프는 당면 문제를 풀기에는 귀가 너무 얇고 주의도 산만해서 일반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을 비롯한 전임자들에 대한 분노를 나침반으로 삼는다.

트럼프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정감 넘치는 모습으로 남북 접경의 ‘평화 마을’ 판문점에서 만난 것은 큰 도전이다. 그는 자신의 협상에서 거대하고 화려한 마술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세계를 향해 “여기 위기가 있는 게 보이나요. 그러나, 짠, 전혀 그렇지 않답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핵무기를 향한 북한의 열망은 마법처럼 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기껏해야 앞으로 추가 회담을 통해 실현할 수 있을 모호한 공식을 만드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외교선언처럼 마냥 모호하고 부정확한 예고편 쯤에 해당할 수 있다.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의 꿈을 공유한다고 밝힌 것처럼 말이다. 김 위원장은 아마도 문 대통령에게 했던 것보다 다소 나은 희망 어린 약속을 할 것이다. 특히 북한은 핵무기가 미국의 수십 년 동안의 적대 정책에 대응한 자위적 조치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들은 트럼프가 김 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것을 비핵화를 향한 환영할만한 첫 조치로 해석해 그에 상응하는 핵무기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동결이라는 양보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가 없는 나라로 되돌아가거나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다시 가입할 것이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그건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고, 불신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과 그 우방이 나서는 단계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트럼프는 단계적 조치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또 그가 이미 말해온 목표에 근접하는 지름길을 모색할 수 있다. 그가 과거 해외 미군기지에 비판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북한을 향해 주한미군을 둘 의도가 없다는 극적인 태도를 보여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말할 것도 없이 관심을 가질 것이고, 미군 철수와 비핵화 스케줄에 따른 무언가를 맞바꾸는 데 동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좀 더 시간을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북한 구금시설 수감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김 위원장은 아마 북한은 사법부가 독립적이라며 임의의 수감자 석방은 어렵다고 반응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인도주의적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다. 북한에 구금됐다가 지난해 혼수상태에서 풀려나 풀려나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진 오토 웜비어에 대한 유감을 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구타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분위기는 좋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경제개발계획과 평양을 세계적수준의 호텔을 가진 세계적 도시로 만들 청사진을 제시하며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할 수 있다. 나아가 비핵화 토대 마련에 앞서 왜 먼저 제재 해제를 해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트럼프가 성공했다고 주장하려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 그는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들쭉날쭉한 정의를 놓고 김 위원장과 토론을 할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은 일정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적어도 비핵화란 북한 핵무기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를 의미한다는 데 동의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농락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여러 작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한국의 여론을 의식한다면 남북 정상회담 정신에 기초하면서도 제재를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한국 일본 미국의 동맹관계를 약화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무시되거나 홀대 받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두 지도자와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남북 대화의 진전에 따라 군사적 선택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그 모든 대안을 테이블 위에 둘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정권이 최소한 진정한 비핵화 목표를 인정하고 대화를 계속해 이후 정상회담에서 최종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결과가 무엇이든 트럼프는 자신이 “최악의 거래”라고 말했던 이란 핵 합의보다 나은 협상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가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트럼프가 그런 자기 반성을 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실은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조지프 코벨 국제대학장ㆍ전 국무부 차관보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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