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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9.26)

입력
2017.09.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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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덕에 인류가 핵전쟁 위기를 모면한 게 1983년 오늘이었다. AP 연합뉴스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덕에 인류가 핵전쟁 위기를 모면한 게 1983년 오늘이었다. AP 연합뉴스

구 소련 군인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Stanislav Petrov, 1939~2017)의 부고가 알려진 경위는 “핵전쟁 위기에서 세계를 구한” 그의 특별한 하루와 이후의 삶만큼이나 극적이었다. 그의 78세 생일(9월 9일)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인 독일의 평화 활동가 칼 슈마허(Karl Schumacher)가 전화를 걸었다가 아들(Dmitri)로부터 페트로프가 넉 달 전(5월 19일) 숨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1983년 오늘(9월 26일) 새벽, 소비에트 핵방공관제센터 당직사령이던 공군 중령 페트로프는 미국이 핵미사일(ICBM) 5기를 발사했다는 위성조기경보를 포착했으나 약 5분여 뒤 시스템 오류로 결론짓고 상부에 보고했다.

레이건ㆍ안드로포프 체제의 미ㆍ소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였던 때였다. 레이건은 스타워즈 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핵 선제공격을 염두에 둔 군사훈련을 준비 중이었다. 반면 소련은 서기장 안드로포프의 와병으로 초비상 상태였다. 항법오류로 영공을 침범한 대한민국 민항기(KAL 007)를 격추시켜 269명의 사망자를 낸 게 불과 3주 전이었다.

페트로프는 미국이 선제공격 한다면 미사일 5발만 쏘고 말리 없다 여겼다. 갓 교체한 경보 시스템이 불안정했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반반 확률 속에 갈등하던 그는 ‘컴퓨터 오류’로 판단했다. 그리고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지상 미사일 레이더를 주시했다고 한다. 레이더는 고요했고, 그는 옳았다. 위성 경보 시스템이 햇빛 반사광을 미사일 발사광으로 오인한 것으로 직후 확인됐다.

관제센터 사령관이던 유리 보틴체프(Yuri Votintsev)는 그를 격려했지만, 페트로프가 받은 건 인사조치였다. 허술한 방공망을 서방에 알리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는 신경 쇠약까지 겹쳐 예편했고, 내도록 가난한 연금생활자로 살았다.

보틴체프는 마음의 빚을 갚듯 98년 회고록에 저 사실을 낱낱이 공개했다. 그걸 본 독일인 정치활동가 슈마허가 그를 독일로 초청, 세상 앞에 서게 했다. 그는 강연과 인터뷰 등으로 얼떨결에 바빠졌고, 몇 개의 상을 탔다. 1급 군사기밀이어서 생전의 아내(97년 작고)에게도 자기가 한 일을 말한 적 없었다는 그는 2004년 인터뷰에서 “내 일이었고,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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