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IMF 구제금융만 6번째’ 몽골을 구할 대통령은

입력
2017.06.23 20:00
0 0
몽골 울란바토르 시민들이 관광객 유치 행사를 위해 전통의상을 입고 낙타에 탄 채로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 국영통신 몬차메 웹사이트 캡처.
몽골 울란바토르 시민들이 관광객 유치 행사를 위해 전통의상을 입고 낙타에 탄 채로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 국영통신 몬차메 웹사이트 캡처.

#1. 2016년 9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최대의 육류 시장에서 점포를 운영 중인 간툴크후르씨의 장부는 날로 빼곡히 채워져 간다. 하지만 간툴크후르씨의 얼굴엔 웃음기 하나 없다. 수입 장부가 아닌 들어올 돈 하나 없는 외상 장부기 때문이다. 2009년 이래 최저 경제성장률(1.0%)을 기록한 2016년 경제 한파는 몽골인들의 주식인 양고기를 파는 그도 비껴가지 못했다. 간툴크후르씨는 “매일 고기를 다 팔아 치우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바닥났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2. 2017년 2월. 자르갈톨가 에르데네바트 몽골 총리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는 도움을 거절할 순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가 말한 ‘자발적 도움’이란 몽골인들이 국가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시작한 몽골판 ‘금모으기 운동’. 4개월 후까지 5억8,000만 달러 규모 국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국가 경제가 끝없이 추락할 길목에서 몽골 국민은 1997년 한국인들이 그랬듯 집안 곳곳에 숨겨뒀던 금붙이, 외화, 보석뿐 아니라 유목민인 이들에게 가장 큰 재산인 말까지 내놓고 있었다.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급락으로 몽골에 지독한 겨울이 스쳐 지나간 지난달 24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드디어 몽골 정부에 4억3,400만달러의 장기 차관을 승인하며 숨구멍을 틔웠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몽골에 민주 정권이 들어선 1990년 이래 무려 여섯 번째 구제금융이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한국과 일본도 30억달러를 보탰고, 몽골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150억 위안(약 22억 달러) 규모의 스와프 협정을 연장했다.

하지만 기뻐할 수 있는 순간은 잠시뿐이다. 여당 몽골인민당(MPP) 내각이 받아들인 경제 개혁 및 긴축 조치가 몽골 서민들의 숨통을 옥죄는 것은 시간 문제다. 때문에 오는 26일 대선은 뼈아픈 경제 개혁을 몽골 국민이 받아들일지 판가름하는 날이다. 이원집정부제인 몽골에서 대통령은 외교ㆍ국방 등 제한된 권한을 갖지만, 각종 긴축조치에 반대하는 야당 민주당 또는 몽골인민혁명당(MPRP) 후보가 당선될 경우 견제력을 발휘하기엔 충분한 자리다.

몽골 민주당 칼트마 바툴가 대선 후보. 바툴가 트위터 캡처
몽골 민주당 칼트마 바툴가 대선 후보. 바툴가 트위터 캡처

자산 통제권 확보, ‘자원의 저주’ 벗어날까

몽골 대선의 최대 쟁점은 정부가 구제금융을 위해 포기한 자산 통제권이다. 자르갈톨가 에르데네바트 총리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손에 들고 버틴 카드는 외국계 기업들이 몽골에서 벌어들인 수입을 몽골 금융기관에 예치하도록 의무화한 조항이었다. 몽골의 주요 수출품인 구리, 석탄 등 광물을 채굴하는 외국 기업들의 수익 흐름을 파악하는 동시에 금융자산을 늘리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IMF는 구제금융을 승인하기 한 달 전, 이 규제를 문제 삼으며 전면 회동 연기를 통보해왔다. 몽골 정부는 결국 나흘 만에 해당 조치에 대한 재검토 방침을 밝혀 사실상 ‘투항’한 끝에 차관 지원을 얻어 냈다. 이에 민주당의 칼트마 바툴가 대선 후보는 “얼마나 많은 수출품이 몽골을 떠나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외국 기업 규제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바툴가 후보의 주장은 국가주의적 포퓰리즘과 교묘히 결합되면서 몽골 국민의 표심을 흔들고 있다. 유도ㆍ삼보 선수 출신인 바툴가 후보는 중요 공식 석상마다 몽골 전통의상 ‘델’을 입고 나타나 몽골의 자주권을 외치며 외국 기업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8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포퓰리즘 캠페인과 유사성을 인정하냐’는 질문에 흔쾌히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전략은 바툴가와 유사한 공약으로 다투고 있는 사인크후 간바타르 MPRP 후보에게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캐나다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의 줄리앙 디에르케르 교수는 외교전문매체 더디플로매트 기고를 통해 “몽골 대선이 ‘몽골다움’의 쇼케이스가 됐다”며 “부패, 경제 개혁 등 실제 정치적 과제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해서 야당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응석은 아니다. 현재로서 몽골 경제를 되살릴 유일한 구세주는 수출의 약 88%(2015년 기준)를 차지하는 구리(45%)ㆍ석탄(11%) 등 광물과 금(16%)이다. 이중 세계 최대 규모의 구리ㆍ금 광산인 오유 톨고이 광산에 대한 관리권은 다국적 기업 리오틴토그룹(지분 66%)이 쥐고 있어, 리오틴토의 발언권이 정부 못지않은 상황이다. 외국 기업 규제에 대한 IMF의 제동에도 리오틴토 측의 반발이 크게 작용했다고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지난 5월 보도했다. 국익 증발을 막기 위해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사실 당연한 움직임이다.

눈앞의 불 끄기도 시급한 현실

하지만 규제에도 정치적ㆍ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몽골은 27년간 여섯 차례 IMF 구제금융을 거쳤고, 한중일 등 개별 국가의 도움까지 열거하면 몽골이 외국 자본의 도움으로 위기를 타개한 전력은 끝도 없다. 2011년 17.3%까지 치솟았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원자재 위기, 지난해 중국과 무역 갈등 등을 거치며 곤두박질치고 있다. 성장률 반등을 위해선 원자재 가격 회복세를 타고 오유 톨고이 광산 생산량을 대폭 늘리는 방법이 유일한데, 다시 외국 기업들과 발언권 다툼을 거듭해야 하는 굴레로 접어든다. 이같은 상황에서 몽골에 규제와 같은 ‘호사’는 결코 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그나마 희망은 몽골 일부에서 산업 다변화를 위한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2월 ‘생사결단의 기로에 선 몽골’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장기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 및 무역 상대국 다변화만이 몽골이 경제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답”이라며 “다행히 최근 지식기술, 제조업 등 ‘건강한’ 산업의 부흥 징조가 보인다”고 진단했다. 몽골국립대의 카쉬출룬 출룬도르지 경제학 교수는 “몽골 정부를 벗어난 민간 영역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며 “(광산업으로 급성장하던) 과거와 달리 꾸준하고 순조로운 성장으로 발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