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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는 왜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을까?

입력
2017.08.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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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TV프로에 외국인들이 나와서 한국문화와 자국의 문화적인 특징과 차이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얘기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한 외국여성이 ‘한국인들은 왜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외국인의 관점에서는 우리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문화가 퍽이나 이상했던가 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사적 관계에서는 그 사람과의 관계명칭을 부르고, 공적 관계라면 지위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가족 간에는 아버님, 형, 삼촌처럼 관계를 부른다. 그러다 형이나 삼촌이 복수일 경우는 큰형, 작은형 같이 대소를 통해서 관계를 구분한다.

또 공적 관계에서는 과장님, 부장님처럼 지위를 불러준다. 이런 경우에 복수가 되면 김대리, 박대리처럼 성만 붙이는 방식을 취한다. 즉 같은 혈연집단 안에서는 성으로 구분할 수 없으니 대소를 기준으로 하며, 성이 다른 외집단일 경우는 성을 구분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지위를 불러줄 때는 그 사람의 최고지위를 부르는 것이 관례이다. 예컨대 한 번 국회의원은 죽을 때까지 의원님으로 불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듣는 사람을 배려하는 유교적 허세문화에 기인한 측면이다.

이외에도 거리가 있는 사람을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든 정리해서 ‘형으로 부를 게요’와 같은 사적 관계로 변모시킨다. 즉 공적 관계보다는 사적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문화의 특징은 ‘우리’라는 집단을 강조하는 가치관에 입각한 측면이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능력보다도 관계가 더 중요한 성공열쇠가 되기도 한다. 즉 개인보다는 집단의 가치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는 패밀리 네임인 성을 개별이름보다 앞에 쓰는 것이나, 주소를 적을 때 시→군→동의 순서로 하향하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서구의 개인 중심과는 정반대의 집단 우선구조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관계와 지위를 부르는 문화의 공통점에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측면도 존재한다. 이를 피휘(避諱) 즉 이름 부르기를 꺼리는 문화라고 한다. 피휘는 군주의 이름이 가장 대표적이다. 군주가 결정되면 그 이름이 들어가는 글자는 그것이 설령 이전의 역사서 같은 문서라도 모두 다른 글자로 대체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름의 글자를 피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에서 존경하는 인물의 이름을 일부러 따서 짓고, 이름 뒤에 넘버만을 추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이다.

이 때문에 조선의 경우, 국왕이 될 대군(大君)의 이름은 모두 한 글자이며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가 사용되었다. 이는 정조의 이름인 이산(李祘)이나 세종의 이도(李祹), 또 세조의 이름인 이유(李瑈)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여기에는 이성계(李成桂)나 이방원(李芳遠)과 같은 개국시절의 군주와는 다른 분명한 의도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불교의 관세음(觀世音)보살이 관음으로 축약되는 이유와 관련해서, 당나라 법림이 지은 ‘파사론(破邪論)’에는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세(世)’자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관음의 명칭과 관련해서는 번역과 관련된 견해도 있지만, 당나라 때는 이러한 인식이 상당히 일반적이었던 듯하다. 그러므로 이는 현세의 황제가 보살의 이름을 개명시킨 지극히 동아시아적 사건이라고 하겠다. 인도출신의 보살도 동아시아에서는 동아시아의 법칙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자기 이름을 스스로 넣어서 말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극심한 오글거림을 느끼게 된다. 이는 동서문화의 충돌이라는 간극 속에 우리의 현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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