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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통합 60년, 국제 의제 선도... EU는 여전히 ‘실험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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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통합 60년, 국제 의제 선도... EU는 여전히 ‘실험실’이다

입력
2017.03.16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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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로마에서 60주년 행사

고령화·경제위기 등 이유로

“박물관이다” 시각도 존재

“국제사회 통합하고 기여하고”

EU의 책임과 역할은 여전

트럼프 대신해 되레 더 막중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이 9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로파’ 건물 내 회의장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있다. 브뤼셀=AFP 연합뉴스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이 9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로파’ 건물 내 회의장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있다. 브뤼셀=AFP 연합뉴스

유럽통합은 박물관인가. 아니면 실험실인가. 이달 25일 ‘환갑’을 맞는 유럽연합(EU)에 던지는 질문이다. 이날 유럽연합(EU) 27개국(영국 제외) 수반들이 로마에 모여 60년 전 EU의 전신 유럽경제공동체(EEC) 출범을 기념한다.

1957년 당시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충돌을 막아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 서유럽 6개국(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ㆍ베네룩스 3국) 수반은 로마에서 EEC 설립조약에 서명하고 통합 진전을 다짐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올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지도자들이 모여 선대가 가꾸어 온 통합을 점검하고 숙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들은 60년 전 지도자들처럼 야심에 찬 계획을 세우기보다 시민들이 지지하는 ‘유럽’ 차원의 테러대응과 국방협력 강화 등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것을 논의한다. 게다가 영국의 EU탈퇴(브렉시트) 협상이 조만간 시작되는 관계로 영국은 이 잔치에 참석하지 않는다. 물론 60년 전에도 영국은 그 자리에 없었다.

‘유럽’을 박물관으로 보는 사람들은 유럽 모델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EU가 성장보다 복지를 더 중시하고, 고령화가 진전되었지만 이민을 환영하지 않고, 2010년 단일화폐 유로를 사용하는 유로존에 발생한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이 지지부진하여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여전히 민족국가가 충성심의 원천인데 국가가 보유한 여러 가지 정책 권한을 EU의 초국가기구로 이양하는 통합방식도 문제라고 본다. 이들은 EU가 점차 쇠퇴해 곧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거라 주장한다.

반면에 유럽통합을 유럽의 독특한 실험으로 간주하는 실험실 시각도 있다. 이 견해는 성장과 복지를 양자택일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보고, 유럽통합이 평화를 목적으로 하고 그 수단으로 경제통합을 진행해 왔음을 강조한다. 또 EU 각 회원국이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점차 유럽통합을 더 강화해 왔으며 대외환경,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통한 미국과의 관계도 통합 진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생각한다.

이순(耳順)을 계기로 유럽의 통합 과정을 회고해 보면 중장기적으로 실험실 시각이 현실화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6개국에서 출발한 EU가 현재는 영국을 포함하면 28개국으로 늘어났다. 구 소련 지역과 일부 발칸반도를 제외한 유럽대륙 대다수 국가가 평화 프로젝트에 동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합도 다양한 분야에서 심화했다. 상품이나 서비스는 물론이고 자본과 사람도 인구 5억명이 넘는 단일시장에서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여기에 28개 회원국 가운데 19개 나라가 자국 화폐를 폐기하고 유로라는 단일 화폐를 채택했다. 보통 단일 국가가 단일 화폐를 채택하는데 유럽의 여러 국가가 엄연히 존립하는 상황에서 유로존의 조성과 유지에 합의한 것은 EU가 역사상 보기 드문 실험임을 증명한다.

물론 유럽통합이 문제 없이 전진할 거라고 낙관하기에는 불안요소도 많다. EU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 2010년 유로존 위기를 낳았던 그리스 경제위기의 재발 가능성, 순탄치 않을 브렉시트 협상, 난민위기의 재발 여부 등 여러 가지 위기가 상호 작용하여 유럽 전체의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유럽의 연합을 지지해 온 역대 미국 대통령과 달리 유럽의 분열을 지지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도 유럽이 이전과는 매우 다른 상황에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규범을 만들고 이를 확산하는 권력으로서 EU는 건재하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변화 정책을 부정하고 빈곤퇴치 등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반해, EU는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을 중시한다. EU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도주의ㆍ개발원조(ODA) 공여국 역할을 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약 7,400억달러(약 849조원)를 지불했다. 60주년 기념으로 발행한 백서에서도 기후변화 대응과 불평등 완화, 지속 가능한 개발 등 국제적 의제를 위한 유럽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EU의 유력지도자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트럼프를 대신할 ‘서구문명의 새 지도자’로 거명되기 시작했다.

EU 모델은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은 2015년 12월부터 아세안경제공동체를 발족해 한 걸음 나아갔다. EU와 유사하게 회원국 간 상품과 서비스, 노동 등의 자유이동이 목표다. 아세안은 내정 불간섭과 국가 간 협력을 중시하여 유럽과는 다르게 국가 주권을 존중하는 통합 과정을 거쳐 왔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주의를 내세워 국제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키워 왔다. 아세안이라는 블록이 없이 동남아 개별 국가들이 국제정치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낮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고려된 것이다.

한국도 EU와 같은 국제사회 협력 모델의 긍정적인 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호무역주의와 불확실성 고조, 중국 등 주요국의 미국발 위기 대응이 대외 경제 환경에 취약한 한국이 직면한 현실이다. 냉철하게 현실을 인식하여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 60여년간 통합을 선도해 온 EU의 경험이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이 될 수 있다. 기존의 양자 동맹을 유지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북아 협력을 강화하고 전세계적 차원에서도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역량을 결집하고 발휘해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ㆍ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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