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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장면 총리의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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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장면 총리의 '친일'

입력
2012.06.2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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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선친은 동경 2ㆍ8 독립선언에 참여하여 와세다에서 퇴학당한 뒤 중국에 망명, 임시정부 의정원의원을 역임했습니다. 저희 집안은 아무도 창씨개명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소년 시절 인근에 사시던 장면(張勉) 총리님을 일본 이름 다마오까 쓰도무(玉岡勉)씨로 불렀다가 부친에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 꾸중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 지난 정부에서 주일 대사를 지낸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가 그제 의 '박정희 혐오와 애착'을 읽고 메일을 보냈다. 라 교수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백봉(白峰) 라용균으로 제헌의원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의정 활동이 모범적인 국회의원에게 주는 '백봉 신사상'은 그를 기려 만들었다. 라 교수는 1940년생이니, 운석(雲石) 장면이 1960년 제2공화국 총리가 되기 전의 에피소드를 회고한 듯하다.

■ 운석은 1898년 태어났다. 부친은 일제 치하 부산세관장을 지냈다. 운석은 수원농고와 맨하튼 가톨릭대학을 나와 서울 동성상업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광복 후 초대 주미 대사를 거쳐 국무총리에 올랐다. 그러나 1956년 야당 민주당 후보로 부통령이 됐고, 1960년 3ㆍ15 정ㆍ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의 2인자 이기붕과 맞섰다. 자유당은 고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유고(有故)에 대비, 부통령 선거에 총력을 쏟았다. 이런 상황에서 '다마오까 쓰도무' 괴벽보 사건이 발생했다.

■ 유령단체 이름으로 주요 도시에 나붙은 벽보는 일제 국민복 차림의 운석이 일본군 장교들과 찍은 사진과 함께 '친일 경력'을 나열했다. '음흉한 친일도배(徒輩)에 속지 말자' '민족정기가 통곡한다'는 구호가 요란했다. 경찰 수사로 자유당 배후가 드러났으나, 4ㆍ19 혁명의 소용돌이에 묻혔다. 라 교수의 회고와 벽보 사건에 비춰보면, 요즘 우리 사회의 친일 논란은 반세기 전 그 '자유당 때'보다 금도(襟度)가 부족한 느낌이다. 지식인들의 성찰이 아쉽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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