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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몽니 정치의 계보

입력
2017.07.2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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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면서 ‘몽니’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어떤 신체적 특성과 성격을 연관시키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지만 이마가 툭 튀어나온 사람을 보고는 “몽니께나 부리게 생겼다”고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몽니는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부리는 성질’(이희승 편저 국어사전)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몽니 사납다’ ‘몽니 부리다’ ‘몽니쟁이’ 식으로 쓰인다. 어떤 어원에서 유래한 낱말인지에 대해서는 국립국어연구원도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순 우리말이라니 어감이 또 다르게 다가온다.

▦ 시골을 떠나 도회지로 나온 뒤로는 잘 접하지 못했던 이 낱말을 일상에서 다시 듣게 해 준 이는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였다. 1998년 12월께였다. DJ에게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면서 “참다가 안 되면 몽니를 부리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해 ‘몽니’란 단어가 크게 부각됐다. 내각제를 고리로 한 DJP연합 대가로 김대중 정부에서 내각 절반의 지분과 함께 국무총리가 된 그는 내각제 약속 관철과 지분 확인을 위해 공공연히 ‘몽니’를 부렸다. JP가 사실상 사어(死語)였던 ‘몽니’란 말을 다시 살려 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 그 이후 우리 정치판에서 종종 오르내리던 ‘몽니 정치’란 용어가 다시 유행할 조짐이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가 앞장섰다. 홍 대표는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대표 회동에 참석하지 않았다.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이유였지만 몽니 부린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됐다. 집권당 시절 올렸던 담뱃세와 유류세 인하를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주장하는 것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부자 증세에 맞서 어깃장을 놓는 몽니로 비친다. 다른 야당들을 본부중대 여당의 1,2,3 중대로 폄훼하는 것 역시 다당제 정치를 부정하는 몽니다.

▦ 홍 대표는 청와대 여야대표회담 전날인 18일 입원 중인 병원으로 JP를 찾았다. 병문안을 겸해 보수 정통 맥을 잇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을 터이다. 병상의 노 정객은 현실 정치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홍 대표에게 “정치에 유머도 발휘하고 위트도 갖고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몽니 정치의 원조인 JP도 보수 재정립을 꾀하는 후배가 몽니 정치의 계보를 잇는 걸 바라진 않는 것 같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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