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혜정 기자

등록 : 2018.04.17 04:40
수정 : 2018.04.17 09:37

채용만 블라인드, 인사 기록은 꼬치꼬치

등록 : 2018.04.17 04:40
수정 : 2018.04.17 09:37

#본보 조사 기업ㆍ병원ㆍ대학 10곳 중

9곳서 가족 학력ㆍ직업 기재 요구

가족 주민번호 요구도 8곳이나 돼

직원들의 재산과 사회단체 가입 여부, 가족들의 직업 등을 적도록 하고 있는 한국화학연구원의 인사기록카드. 고용진 의원실 제공.

지난달 서울의 한 대학교 교직원으로 취직한 최성은(27ㆍ가명)씨는 입사 후 인사기록카드를 작성하다 고민에 빠졌다.

키와 시력, 몸무게, 종교 등 개인정보를 묻는 질문이 절반을 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최씨가 머뭇거릴 수 밖에 없던 건 가족사항을 기재하는 부분이었다. 카드에는 가족들의 직장, 학력은 물론 주민등록번호까지 적어야 했다. 인사팀은 “교내 의료원이나 평생교육원 이용 시 가족 할인 혜택을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할 뿐이었다. 최씨는 “가족신상이 인사와는 큰 연관이 없는데 굳이 민감한 정보까지 기록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능력 외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블라인드 채용이 민간 부문까지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채용 후 인사사항 전반을 관리하는 인사기록카드에는 학력은 물론 개인 신체 및 가족사항 등 직무능력과 무관한 개인정보가 버젓이 기록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일 한국일보가 사기업 및 병원, 사립대 등 10곳의 인사기록카드를 확인한 결과 9곳이 가족의 학력 및 직업 기재를 요구했고, 가족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8곳이었다. 신체사항(6곳) 및 종교(5곳)를 묻는 곳도 절반이 넘었다. 심지어 물류회사인 A사는 보유재산 및 자신의 생활수준을 상ㆍ중ㆍ하로 나눠 적게까지 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의무화된 공공기관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ㆍ방송통신위원회ㆍ원자력안전위원회 소속 75개 공공기관을 조사한 결과 인사기록카드에 가족사항 등 직무와 무관한 개인사를 묻는 경우가 약 34곳으로 절반에 육박(45%)했다.

기업들은 직원 관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정보를 수집하되 보안만 철저히 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인사카드에 자격 및 가족정보를 상세히 요구하고 있는 B제약사 관계자는 “직원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위해선 직무관련 정보를 자세히 기재해 두는 것이 향후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보는 최소한의 인사권자만 열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일부 직원을 스펙을 제외한 블라인드 채용으로 선발했다.

#깜깜이 채용 의무화한 공공기관도

75곳 중 34곳, 개인사 상세 기재

능력 취지 무색, 법적 논란 소지도

인사기록카드에 직무능력 외의 개인정보를 적는 것이 법적으로도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20조는 인사기록카드에 해당하는 근로자명부에 대해 성명, 성별, 생년월일, 주소, 이력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이 정한 ‘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수집해야 한다’는 기준을 넘어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블라인드 채용 기조와 상충한다는 게 큰 문제다. 입사자 평가 시 지원자 식별을 위한 최소한의 정보만 수집한다는 원칙이 향후 인사관리에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능력중심평가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순희 경기대 직업학과 교수는 “블라인드채용은 개인의 학연ㆍ혈연ㆍ지연이 채용은 물론 향후 경력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을 좌우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라며 “2016년부터 국가공무원의 인사기록카드에 직무연관이 낮은 학력, 신체사항, 결혼유무가 제외된 것처럼 정부가 기록관리 가이드라인을 공공기관에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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