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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표향 기자

등록 : 2018.03.29 04:40

[딥 DEEP 딥] 김기덕 영화는 여전히 예술인가

등록 : 2018.03.29 04:40

“죽어가는 연기 촬영하는 것과

실제 죽여가며 찍는 것 별개처럼

그의 작품은 범죄 증거일뿐”

“모든 작품 가학적이지 않고

여성의 아픔, 구원의 문제도 성찰

작품은 그 자체로 평가해야”

“영화사에서 그를 없애긴 불가능

남성편향적 영화계의

구조적 모순 바꾸는 계기돼야”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영화 ‘섬’.

“그런데 당신들도 아마 그 끔찍한 소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텐데…. 김기덕이 여배우들한테 했다는 그 몹쓸 짓에 대한 소문들 말이야.

나에겐 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여자든 남자든 사람은 누구나 두루 불쌍하고 안타까운 존재들이다. 인격적 상처도, 육체적 상처도 되도록 입혀선 안 되는…. 나 역시 누구나 쾌락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그 쾌락의 진원지가 상대방의 고통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개봉했던 2003년 발간된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이라는 비평집에 실린 김기덕 감독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의 온갖 독설을 다 받아왔다. 내가 여자 몸을 팔게 할 놈이라면 나는 감독이 아니고 그저 범법자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5년이 흐른 2018년 현재 김 감독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Me Too)’ 폭로로 경찰 내사를 받고 있다.

세계가 인정하는 거장의 추악한 민낯은 한국영화계는 물론 세계영화계까지 뒤흔들었다. 그리고 해답을 찾기 힘든, 어쩌면 영원히 입장차를 좁힐 수 없을지도 모를 논쟁거리를 던졌다. 창작자의 자아와 창작물의 세계관은 분리 가능한 것인가. 개인의 비윤리성 때문에 예술적 성취까지 폐기돼야 온당한가.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김 감독의 입신을 있게 한 영화계, 특히 영화평론가들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미투 이후 우리는 김 감독의 영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그래픽=성시환 기자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피에타’를 연출한 김기덕 감독이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황금사자상에 입을 맞추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비주류로 세계영화계를 정복

김 감독은 태생부터 충무로 비주류였고 지금도 여전히 주류 시스템 밖에 있다. 그는 10대 때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20대에 해병대에 복무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독학으로 회화를 공부했다. 영화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고 심지어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는 영화를 본 적도 없었지만, 독창적인 시나리오를 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1996년 데뷔작 ‘악어’부터 미개봉 신작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까지 22년간 영화 23편을 연출했다. 1년에 1편씩 내놓은 셈이다.

김 감독은 작품 활동 내내 ‘여성 혐오’라는 비판에서 비켜나지 못했다. ‘악어’는 한강에서 시체를 건져 유족에게 돈을 뜯어내는 남자가 집단강간 충격으로 자살하려던 여자를 살려내 욕망을 충족하는 이야기였고, ‘파란 대문’(1998)에선 성매매를 매개로 화해하는 두 여성을 그렸다. ‘섬’(2000)에서는 여성 성기에 낚시바늘을 넣는 장면으로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논란의 정점은 ‘나쁜 남자’(2002)였다. 조직폭력배가 평범한 여대생을 윤락녀로 전락시키고 결국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윤리적 문제를 넘어 본능적 불쾌감을 안겼다. 주연 여배우는 “영혼을 다쳤다”고도 말했다.

김 감독의 영화 안에서 여성은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남성의 폭력적 욕망을 배설하는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는 비판이 거셌다. 한 평론가는 ‘페니스 파시즘’이라고도 정의했다. 반대로 그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그의 영화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좌절과 분노를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강간과 살인 같은 극단적 표현은 예술적 상징으로 기능하면서 계급주의와 약육강식 같은 사회 모순을 환기한다는 해석이었다.

격론은 뜨거웠으나 곧 잦아들었다. 해외 영화제 트로피가 방패막이가 됐다. 앞서 ‘섬’과 ‘수취인불명’(2001)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나쁜 남자’를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보냈던 김 감독은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빈 집’으로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았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한 해에 감독상 2개를 받는 건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김 감독은 단숨에 거장이 됐고 명성이 따르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각광받았다. 해외 유명배우들도 그의 작품을 찾았다. 대만배우 장첸이 ‘숨’(2007)에, 일본배우 오다기리 죠가 ‘비몽’(2008)에 출연했다. 해외 투자유치도 용이해졌고 유명 영화제 진출은 더 잦아졌다.

‘비몽’ 촬영 중 배우 이나영이 죽을 뻔한 사고를 겪은 뒤 은둔해 오던 김 감독은 1인극 같은 자전적 다큐멘터리 ‘아리랑’을 들고 2011년 돌아왔다. 칸국제영화제가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안기며 그의 복귀를 환영했다. 그는 베를린, 베니스, 칸까지 3대 영화제 본상을 수상한 국내 유일 감독이라는 수식도 달았다.

이 같은 명성은 흥행과는 무관했다. 소수 관객만이 그의 영화를 봤고, 또 그 중 일부만이 열광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몰랐던 관객도 ‘피에타’가 2012년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아오자 그를 한국영화의 대표감독으로 인정했다. ‘피에타’는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유일한 한국영화다.

‘사마리아’는 원조교제를 소재로 다룬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인간의 원죄와 구원을 사계절에 빗대어 묘사했다.

평단 권력과 영화제 권력이 빚어낸 괴물

창작자가 윤리적이라고 해서 창작물이 반드시 윤리적인 건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경에도 상징으로서 근친상간이 나온다. 그렇다 해도 김 감독처럼 현실의 모습이 작품 세계에 포개진다면 ‘혐의’와 ‘개연성’은 의심해 볼 수 있다. 김 감독의 영화를 면밀하게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죽어가는 연기를 생생하게 촬영하는 것과 실제 사람을 죽여가면서 촬영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며 “윤리성이 담보되지 못한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닐뿐더러, 김 감독이 성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이상 그의 작품은 범죄의 증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탈리아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를 촬영하면서, 여성으로서 느끼는 수치심을 영화에 담기 위해 여배우 동의 없이 성폭행 장면을 연출했다고 2013년 밝혀 뒤늦게 논란을 빚기도 했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마지막 황제’) 수상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김 감독의 미학적 성취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긍정 평가도 있다. “성범죄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고 여성 혐오적 시각도 비판 받을 여지가 충분하지만, 작품 전체를 싸잡아서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 감독의 영화가 모두 가학적이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도 그 근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선 구도적 시선을 보여주고, ‘빈 집’에선 학대 당한 여성의 아픔을 그렸다. ‘피에타’는 구원의 문제를 성찰한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영화적 표현을 순결주의로 접근해 도덕성을 따지면 표현의 자유를 저해할 수 있다”며 “친일 예술가를 반드시 친일파라고 명시하되 작품은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하듯 김 감독의 영화도 별개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도 “비록 방식은 거칠지만 인간 내면의 극한을 탐구하는 동물적 예술감각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평했다.

김 감독의 권위는 영화적 성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김 감독을 발굴하고 지지한 평단 권력과 세계영화제 권력의 시너지도 무시 못할 후광으로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 시너지는 영화계에 목격담이 파다했던 김 감독의 악행까지도 가리고 말았다. 강유정 평론가는 “세계 유명 영화제들이 유럽권 작품에선 인문학적 깊이를 따지면서 아시아영화에선 파격을 선택하는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된 측면이 있다”며 “그 수혜자가 김 감독이라는 점에서 해당 영화제도 김 감독 사건의 공범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짚었다. 김 감독의 신작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이 올해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김 감독의 여배우 폭행 논란을 두고 독일에서 비판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이에 베를린영화제는 초청을 재검토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작가주의 또는 거장이라는 이름의 권력은 미투의 거센 물결에 해체되고 있다. 그러나 흔적까지 지워낼 수는 없다. 김 감독 없이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예술영화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감독을 폐기하기는 어렵다는 전제 하에서 그가 온갖 논란을 딛고 거장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 남성권력이 지배해 온 평단과 한국영화계의 구조적 모순을 바꿔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김 감독 개인 차원의 문제로 끝나서는 안 되고 한국영화계의 자기 고백과 반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영화가 추구해 온 인본주의 안에 여성이 있었는지, 혹은 실존주의적 작품 안에 여성의 실존적 고뇌가 있었는지,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한국영화 전반을 재평가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심영섭 교수도 “여성주의적 비판과 고발에도 김 감독을 옹호한 평단 권력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희생되고 이용되고 대상화돼 온 여성을 호명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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