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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우리 너무 욜로족처럼 사는 거 아냐?

입력
2017.08.1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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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동네친구와 저녁밥을 지어먹는다. 식재료 값을 줄여 볼 요량으로 시작한 모임이었다. 그런데 연이은 폭염으로, 우리는 집밥 대신 외식을 택했다. 제대로 된 환기구와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밥을 한다는 건 곤욕스러운 일이다. 어느 날 식당에서 친구가 “우리 욜로족 같지 않냐”고 말했다.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우리 너무 욜로족처럼 사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한 끼에 8,000 ~ 10,000원 하는 밥값과 한 잔에 3,000 ~ 4,000원 하는 음료가 부담스럽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름 내내 이런 상태라면 생활비는 금방 바닥날 것이다. 그래도 30도가 넘는 집으로 돌아갈 바에야 시원한 카페가 낫다고. 한겨울의 난방비처럼 한여름의 냉방비 또한 숙명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한여름 더위와 함께 나의 욜로 생활은 시작됐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란, 현재 자신의 행복이나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원어 그대로 말하자면 ‘인생은 한 번뿐’이기에, 타인의 시선이나 자신을 규제하는 규범 혹은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삶을 찾아가는 생활양식이다. 널리 소개됐듯, 욜로는 2011년 드레이크(Drake)의 ‘더 모토(The Motto)' 가사에 처음 등장했다. 욜로의 전복성은 삶의 방점을 미래에서 현재로 옮긴 데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견디는 게 아니라, 오늘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강조한다.

고용 불안과 저성장 사회에서 청년은 나아질 것 없는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 현재를 조금 더 즐기며 사는 데서 만족을 찾는다. 막연한 미래와 불안한 현재가 만연한 사회에서 저축은 시대착오적이다. 아무리 일하고 노력해도 자산형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안정적 주거가 보장된다면, 부모세대처럼 저축도 하며 10년 뒤를 꿈꿀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전세를 구하려면 최소 1억원이 필요하다. 월급 150만~200만 원으로 몇 년을 모아야 할까? 차라리 50년을 빈곤하게 살면서 하우스푸어가 되느니, 풍류를 즐기는 일이 나은 투자일 것이다.

유독 한국에서는 ‘욜로’가 유통되는 방식은 소비문화에 국한돼 있다. 세 끼 먹을 돈을 아껴 한 끼를 근사하게 먹는다든가, 최저가 외국여행 상품을 구입해서 1박 2일 올빼미 여행을 한다거나, 주택청약에 넣는 대신 고가 전자기기를 산다든가. 욜로족을 타깃으로 하는 저가여행, 음식, 공연 등은 마치 ‘경제적으로 빈곤한 당신, 문화마저 빈곤할 텐가’라며 유혹한다. 할인쿠폰과 이벤트만 잘 활용하면 큰 경제적 박탈감 없이도 소비문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욜로’는 오직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소비자로만 호명된다.

욜로라는 말에 자꾸 히피족이 떠오르는 건 이들이 공유하는 정서, 즉 현재 자신의 삶에 충실 하라는 태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히피족은 삶 자체가 정치적 실천이었고 행동을 통해 스스로 드러내 체제 균열을 일으킨 반면 욜로족은 소비를 벗어난 장에서 출현하지 못한다. 욜로족은 자본주의 체제에 위협적이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전유하며 출현한다. 욜로족은 더 이상 나아질 것 없는 미래라는 자신의 한계와 조건을 잘 알고 있지만 일탈이나 저항 대신 다시 순응하는 삶으로 돌아간다.

나 또한 곧 저가항공으로 휴가를 떠날 것이다. 매달 찾아오는 학자금 대출 상환 압박을 견디고, 오늘도 무더위와 씨름하며 선풍기 한 대로 잠을 설치는 나도 숨 쉴 곳이 필요하다. 야근과 업무 스트레스에도 변변한 휴식조차 취할 수 없는 삶 가운데 만난 일시적 해방구. 만일 그것이 ‘욜로’라면, 당분간 적극적으로 즐길 셈이다. 욜로, 그 맹점을 알지만, 이렇게라도 버티지 않는다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다시 살아갈 재간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온몸으로 즐길 것이다. 욜로, 욜로!!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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