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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트럼프 당선에 경제학자도 책임 있을까

입력
2016.11.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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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충격적인 당선에 부분적인 책임이 있을까. 그들이 트럼프가 당선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해도 공공의 논쟁에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순 있었을 것이다.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대신 자신의 수업 내용에 충실한 태도를 보였더라면 말이다.

20년 전 ‘세계화가 너무 멀리 진행됐나(Has Globalization Gone Too Far?)’를 출간하면서 책의 뒷표지 추천사를 부탁하러 한 유명 경제학자를 찾아간 적이 있다. 책에서 나는 정부가 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대응하지 않는다면 지나친 세계화는 사회 분열을 심화시키고 분배 문제를 악화시키며 국내의 사회적 계약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이후 일반적인 통념이 되었다.

그 경제학자는 내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어떤 분석에도 동의할 수 없다면서 내 책이 “무지한 이들에게 탄약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호무역주의자들은 내가 책에서 지적한 세계화의 부정적인 측면만 귀 기울여 들으려 했다. 자신들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어젠다를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다.

아직까지도 동료 경제학자들에게 비슷한 반응을 듣고 있다. 어떤 이는 주저하며 이렇게 물어보기도 할 것이다. “당신 주장이 악용될 수도 있고 당신이 비난하는 선동가, 포퓰리스트 정치인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는데 걱정스럽지 않나.”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공공 토론에서 우리 주장을 악용할 위험은 상존한다. 그런 이유로 많은 경제학자들이 무역에 관한 주장을 특정한 방향으로 비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무역 논쟁에서는 단지 한 쪽에만 무지한 이들이 있다는 전제가 은연 중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런 전제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이나 무역협정에 관해 불평하는 이는 지독한 보호무역주의자가 되고, 지지하는 이는 늘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된다.

사실 많은 무역 예찬론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자신만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어젠다다. 특허 규정을 훨씬 더 까다롭게 만들려 하는 제약회사, 해외 시장에 제한 없이 접근하려 하는 은행, 특별 중재재판소를 찾는 다국적기업은 보호무역주의자보다도 공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학자는 자신의 주장을 감춤으로써 효과적으로 일군의 무지한 이들을 또 다른 무지한 이들 대신 지지할 수 있게 된다.

경제학자가 대중을 대할 때는 무역을 옹호하되 세부 사항은 건너 뛰라는 게 오랜 불문율이다. 이 때문에 이상한 상황이 생겨났다. 경제학자가 연구하는 무역의 표준모델이 대체로 선명한 분배효과를 낳게 된 것이다. 즉 특정 생산자나 근로자 부문 집단의 소득이 줄어드는 만큼 무역 이득이 늘어났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노동시장, 신용시장의 결함, 지식 또는 환경의 외부효과, 독점 등의 시장 실패가 이러한 이득을 거둬들이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경제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특허 규정을 까다롭게 강화하거나 보건과 안전 요건을 조화시키는 등 국내 규정의 내용까지 결정할 정도로 국경을 초월하는 무역협정의 경제적 이익이 근본적으로 모호하다는 것 역시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들은 무역협정과 관련해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앵무새처럼 반복해주기를 주문받았다. 미국 내에는 북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중국의 WTO 가입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지역사회가 있는데, 이런 게 분배 문제에 미치는 영향이 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분배 문제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축소시켰다. 또 무역 거래로부터 얻는 총 수익이 최소한 1990년대 이후 비교적 많지 않았는데도 그 규모를 과장했다. 그들은 오늘날의 무역 거래를 ‘자유무역협정’이라고 묘사하는 프로파간다를 지지해왔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르도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해 읽었다면 무덤에서 뛰쳐나올 만한 일인데도 말이다.

무역에 관해 솔직하지 않았기에 경제학자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추락했다. 설상가상으로 경제학자들의 논리는 이들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됐다. 경제학자들이 필요한 모든 대조와 경고를 동원해 무역에 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주지 못한 결과, (종종 잘못된 방식으로) 무역이 지닌 모든 종류의 부작용을 끄집어내서 깎아 내리는 일이 한층 더 쉬워졌다.

일례로 무역이 치솟는 불평등의 원인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역은 그러한 광범위한 경향을 만든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첨단기술에 비교하면 모든 가능성 중에서 상대적으로 별로 중요한 요인도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무역의 부정적인 면에 더 솔직했었다면 이 논의에서 중재자로서 더 큰 신뢰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제학자들이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들여온 수입품이 분배의 정의에 관해 심각한 문제점을 제기한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했다면, 소셜 덤핑(국제 수준보다 훨씬 낮은 임금수준을 유지해 원가를 절감하고 이로써 제품을 국외시장에 싼값에 판매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좀 더 높아진 뒤에 공공 토론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에서 저생산성을 초래하는 저임금으로 만들어진 상품과 명백한 인권 침해를 통해 제조된 상품을 구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대부분의 무역이 ‘불공정 무역’이라고 비난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환율 조작, 무역 불균형, 실직 등과 같은 문제점에 대한 비판에 귀를 기울였다면, 무역 거래가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주장도 적절히 반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경제학자들이 학계에서 제기되는 경고, 불확실성, 의심을 공개적으로 밝혔더라면 세계 경제의 수호자로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적에게서 무역을 지키려 애쓰다 불행하게도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무역에 관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선동정치가(미국과 다른 나라에서 실제로 권력을 쟁취한 이들)의 발언권이 커진다면, 경제학자들이 최소한 부분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ㆍ경제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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