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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한국의 달동네 방문은 어떠세요?

입력
2014.08.1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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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하루 앞두고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교황의 일정에서 ‘꽃동네’를 본 것이 계기였습니다. 꽃동네는 충북 음성군의 사회복지시설인데요, 장애인단체들이 “장애인 수용시설인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고 있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하지요. (▶ 관련 칼럼 보기)

물론 여기서 꽃동네 방문에 대해 논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조심스럽게 이런 제안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교황님, 한국에 오신 김에 ‘달동네’에도 한 번 들러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달동네는 산등성 같은 높은 곳에 형성된 마을을 뜻합니다. 높은 곳에 위치해 달과 가깝게 지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달동네는 이런 지형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 다시 말해 빈민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비슷한 명칭으로는 판자촌이 있지요.

어떤 이들은 아직도 달동네가 남아 있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많이 줄었습니다. 서울만 해도 최근 재개발 문제로 이슈가 된 강남구 구룡마을, 노원구 백사마을, 서대문구 개미마을, 성북구 북정마을, 관악구 봉천동 일대 등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판자촌의 새집 꿈. 부자동네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는 판자촌(오른쪽 사진)이 있다. 곧 주저않을 것 같은 판잣집은 개미통로 같이 좁은길과 어울려 낯선 풍경을 연출한다. 긴 여름해가 지자 건너편 고급 아파트이 불빛이 좁은 골목으로 넘어 온다. '헌집 줄게 새집 주오'. 튼실한 내집을 마련하려는 주민들의 염원이 아홉 마리 용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다. 여기는 개발사업이 백지화 위기에 처한 구룡마을이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판자촌의 새집 꿈. 부자동네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는 판자촌(오른쪽 사진)이 있다. 곧 주저않을 것 같은 판잣집은 개미통로 같이 좁은길과 어울려 낯선 풍경을 연출한다. 긴 여름해가 지자 건너편 고급 아파트이 불빛이 좁은 골목으로 넘어 온다. '헌집 줄게 새집 주오'. 튼실한 내집을 마련하려는 주민들의 염원이 아홉 마리 용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다. 여기는 개발사업이 백지화 위기에 처한 구룡마을이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수십 년 전부터 도시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달동네 판자촌들이 하나 둘 철거된 까닭입니다. 이 자리에는 대부분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이렇게 해서 서울은 세계에서 부동산 가격이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로 거듭났습니다.

그렇다면 그만큼 주거환경이 개선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엔 찜찜한 구석이 많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국내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는 전체 가구의 10.6%인 184만가구입니다. 가구당 평균인원이 2.6명임을 감안하면 인구로는 약 500만 명에 달합니다. 서울로 좁혀보면 전국 평균보다 비중이 높은 전체 가구의 14.4%, 50만 가구가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비주택’ 거주가구입니다. 비주택이란 쪽방이나 비닐하우스 여관 여인숙 등 말 그대로 집이 아닌 곳을 말합니다. 주택이 아니어서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비주택 가구는 정부의 비공개 실태 조사 결과 전국적으로 25만 가구가 넘는다고 합니다.

달동네라고 불리는 도심 내 빈민촌이 사라지고 있다지만, 여기서조차 쫓겨난 이들 상당수가 제대로 된 거주지를 마련하지 못하고 도심을 배회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교황의 방문을 제안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높은 곳에 있지만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 ‘낮은 곳에 임하라’라는 성경 구절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교황의 방문지로 어느 곳보다 뜻 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이유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궁 대신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바티칸의 방문자 숙소에 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검소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달동네에 방문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동정의 의미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달동네가 더 이상 달동네에만 있지 않은 우리네 현실에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또 다른 화두를 던져줄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보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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