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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검사 37년간 오류, 과징금 겨우 7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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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검사 37년간 오류, 과징금 겨우 7억

입력
2017.02.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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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한 직후인 지난해 9월 13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마을에서 길을 걸어가는 주민 뒤로 고리원자력발전소가 보이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 지진이 발생한 직후인 지난해 9월 13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마을에서 길을 걸어가는 주민 뒤로 고리원자력발전소가 보이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한수원, 엉뚱한 곳에 안전성 검사

자칫 치명적 문제 초래 위험에도

원안위선 솜방망이 처벌 그쳐 비판

40년 가까이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 핵심 부품의 안전성 검사를 잘못 수행해온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해 7억4,0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원전 운영정지까지도 가능한 중대한 법 위반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현행 과징금 체계에 근거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9일 제65회 전체회의를 열고 한수원에게 총 7억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행정처분안을 심의, 의결했다. 이날 회의에선 이 같은 처분 내용이 원전 안전에 큰 위협이 되는 위반 행위에 대한 충분한 조치인지에 대해 1시간여 동안 위원들 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으나, 결국 원안대로 의결됐다.

원안위에 따르면 한수원은 무려 37년 동안 고리 1~4호기와 한빛 1~6호기, 한울 1~6호기 등 총 16기 원전의 원자로 용기와 제어봉 구동장치에서 안전성 검사를 해야 할 부분이 아닌 엉뚱한 곳을 검사했다. 원자력안전법 위반이다. 이 사실은 한수원이 2014년과 2015년 각각 고리 4호기, 신고리 3호기에서 자체 발견해 원안위에 보고했고, 이에 원안위가 전체 24기 원전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드러났다.

원자로 용기는 원자력 반응이 일어나는 원전의 중심부이고, 제어봉 구동장치는 원자로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출력을 조절하는 제어봉을 움직이는 기계다. 자칫 문제가 발생할 경우 원전 안전에 치명적일 수 있는 핵심 부위들이다. 이들의 안전성을 검사할 때는 원전을 제작할 때 사용된 도면과 검사용 도면을 비교해 정확한 검사 위치를 확인해야 하는데, 실제 검사 과정에선 이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 앞선 검사에서 잘못 잡은 위치를 37년간 이뤄진 검사에서 그대로 반복 적용해온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김혜정(환경운동연합 원전특위위원장) 위원은 “동일한 위반 사항이 오랜 기간 반복된 점은 심각한 문제인데도 2년이 지나서야 과징금만 부과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규제당국의 조치가 너무 늦었고 안이하다는 지적이다. 검사 오류가 원안법 위반인 만큼 법적으론 원전 운영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원안위도 인정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그러나 “이용자들에게 불편을 주거나 공익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정지 명령을 과징금으로 대체했다”고 해명했다. 검사 오류 원전이 많으니 전력 수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김 위원은 “오류가 확인된 원전부터 차례로 조치를 취했다면 법에 따라 엄격하게 처분할 수 있었음에도 2년이나 늦춘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과징금 7억4,000만원은 원자력 분야 단일 기관에 대한 과징금 최대 액수다. 그러나 16호기 전체에 대한 액수라 호기 별로 따지면 4,500만~5,000만원 수준이다. 원안위는 “원안법 최대 한도를 적용했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지난해 한수원 영업이익의 0.02% 수준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현행 과징금 체계에 따른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한수원을 감시해야 할 규제기관인 원안위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비켜갔다. 검사 오류를 한수원이 자체 발견하지 못했다면 원안위와 KINS는 지금까지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재기(대한방사선방어학회 방사선안전문화연구소장) 위원은 KINS에서 확인한 검사 절차서 자체가 처음부터 미흡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규제 체계의 허점이 확인됐는데도 결과적으로 원전 사업자만 처분한 것이다. 이에 대해 KINS 관계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해 시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날 회의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연구 과정에서 발생한 방사성폐기물을 외부에 매립하거나 무단으로 배출, 소각했다는 사실도 보고됐다. 국내 원자력을 대표하는 두 기관이 모두 원안법을 위반한 것이다. 원안위는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원자력연에도 행정처분을 내린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원자력연의 위법 행위 역시 제보를 통해 규제기관이 인지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규제 대상을 철저히 검증하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경우엔 위법 사안을 밝혀내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위원들은 원자력 위법 행위를 확실히 감시하고 엄중히 처벌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제 체계를 보강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수원과 원자력연 사태에 대해 원자력 분야 한 대학 교수는 “관련 법을 총체적으로 정비하고 규제기관 스스로 역량을 키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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