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핵무기 감축 속 성능 개선 경쟁… NPT 무용론

알림

핵무기 감축 속 성능 개선 경쟁… NPT 무용론

입력
2015.06.14 10:36
0 0

美 전방위 핵 전력 현대화 작업

유럽 배치 단거리 핵 미사일 성능 향상에 30년간 1조달러 투입

전 세계 새로운 군비 경쟁 촉발

깜짝 놀란 러, 스텔스 폭격기 등 10년간 대응 전력 보강에 총력

190 회원국 NPT체제에 의문

핵 위협 줄이기 위한 국제조약들 미·러 등 강대국 입장에 무력화

4월 27일 시작된 ‘2015년 핵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가 지난달 22일까지 일정으로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다. 5년 마다 뉴욕에서 개최되는 NPT 평가회의에서는 ▦핵군축 ▦핵 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3개 주제를 중심으로 NPT 조약 이행 상황을 점검한다. 1970년 군비경쟁을 벌이던 미국과 소련의 합의로 시작된 NPT 체제는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의 핵 보유를 막고, 핵 보유국은 핵무기 증가와 기술발전, 핵실험 등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냉전시대를 거치며 고조된 핵 위협을 줄여 인류의 공멸을 막자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이번 NPT 평가회의에서 NPT 체제가 사실상 실효(失效)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핵 강국의 두 축인 미국과 러시아가 1991년 이후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를 통해 겉으로 핵무기 수를 감축하고는 있지만, 실상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기존 핵무기의 성능을 개량하는 현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무기 전문가들은 “핵무기의 성능 개선으로 특정 지역을 겨냥한 정밀타격이 가능해지면 핵무기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전세계 핵무기 수의 감축과 상관없이 무기의 현대화 작업은 핵 위협을 현저히 증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는 ‘신(新) 냉전’에 돌입하며 군사적 측면에서 핵무기에 대한 전략적 비중을 더욱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냉전 시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유럽 지역에 약 7,000~8,000기의 B61 단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해놓았다. 소련이 유럽을 침공할 경우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경고하기 위한 일종의 ‘인계철선’이었다. 냉전시대가 끝난 직후 나토는 유럽 지역에서 거의 모든 단거리 핵미사일을 제거했다. 하지만 영국 더 타임스는 지난 6일 미국이 냉전 시대 이후 처음으로 유럽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신형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중거리 순항 미사일을 실전 배치할 계획이니 만큼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전세계적인 핵탄두 수 감축 추세로 핵무기 경쟁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된 허상에 불과하다”면서 “핵무기의 성능 개량 작업은 전세계 군축과 NPT 체제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핵무기 현대화 작업에 1조 달러 투자 계획

미국 정부는 현재 B61 핵폭탄의 성능을 개선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B61은 미국이 동맹국들에 제공하는 핵우산의 확장 억지력을 구성하는 핵심무기다. 현재 B61은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벨기에와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5개국 공군 기지에 약 200기 정도 배치돼있다. B61은 중력투하방식으로 전폭기에서 낙하산에 매달려 지상으로 투하된다. 미 국가핵안보국(NNSA)에 따르면 지난해 2월 B61의 성능 개선 시험을 마친 B61-12는 낙하산 대신 꼬리 날개를 부착해 목표를 향해 날아갈 수 있는 정확도를 높였고 내부 유도 시스템을 장착해 명중도를 끌어올렸다. 미국은 약 100억달러(약 11조2,100억원)을 투입해 2020년 중반까지 B61-12 480기를 생산하는 등 B61 핵탄두 개량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B61-12는 미 공군기지에 있는 B-52 전략핵폭격기에 장착해 운용하는 것은 물론 유럽이나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 배치되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 다분히 러시아와 중국 등을 겨냥한 군사 전략이다.

미국의 핵무기 현대화 작업은 단순히 B61 성능 개선에만 그치고 있지는 않다. 미 정부는 ‘핵전략 삼원체제’에 따라 지상에서 발사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해상의 잠수한 탄도미사일(SLBM), 공중의 전략폭격기에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예로 미 공군은 B-52 폭격기를 대체할 수 있는 장거리 스텔스 폭격기 LRS-B를 2020년 중반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특히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이 개발한 F-35A 라이트닝II 합동공격전투기는 차세대 핵폭탄 B61-12을 장착할 수 있는 기체로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터키 등에 배치될 예정이다. 미 과학자연합(FAS)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전방위적인 핵 전력 현대화 작업에는 향후 10년간 3,550억 달러가 투입되고, 향후 30년 동안에는 약 1조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이러한 기조는 전세계의 핵무기 수 감축량과 상관없이 새로운 핵 군비경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핵미사일을 적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한 스텔스 기능 개발 등 핵무기의 질적 경쟁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포린폴리시는 “과거 냉전시대가 핵무기의 양적 경쟁이었다면 신 냉전시대는 질적 경쟁을 벌이는 단계”라고 지적했다.

전세계, 핵무기 질적 경쟁 돌입

최근 전세계의 핵무기 성능 개선 경쟁은 쉽게 눈에 띌 정도로 뜨거워진 상황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는 곳은 러시아다. 미국의 현대화 작업에 자극 받은 러시아는 과거 소련 시절 낡은 핵무기 시스템을 향후 10년간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의 장거리 폭격기인 Tu-16을 개량한 PAK-DA 스텔스 폭격기를 2023년까지 배치할 계획인데,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PAK-DA는 첨단 전자전 장비까지 갖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러시아군은 지난해 신형인 이스칸데르-M(SS-26) 핵미사일을 배치해 전력을 보강했으며. SU-34 전략폭격기 양산을 통해 1970년대의 오래된 핵탄두 탑재 가능 기체들을 빠르게 대체해나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핵전력 경쟁은 중국과 유럽 인도 파키스탄 등 많은 나라들을 자극하고 있다. 핵무기 250기를 보유한 중국은 본래 “최소한의 핵 억지력만을 보유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핵무기 수를 증가하지 않는 대신 중국을 선제 공격하는 국가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핵전력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중국해에서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 등에 대한 영유권을 놓고 이웃국가인 필리핀과 베트남 등은 물론 미국과 대립하면서 중국은 핵전략 강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중국은 2012년판 국방백서에서 1964년 첫 번째 핵실험 이후 일관되게 고수해오던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담은 문구를 뺐다. 여기서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과 같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잠수함탑재유도탄, 전략폭격기로 구성되는 핵전략 삼원체제를 향후 20년 간 최첨단 기술로 현대화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인도는 올해 1월 1톤이 넘는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아그니 5호(Agni-V)를 시험 발사했다. 사거리가 5,000㎞에 달하는 이 미사일은 지역적 경쟁자인 중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또한 카쉬미르 국경지대에서 수십 년 째 인도와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은 핵무기의 성능을 강화하며 인도를 위협하고 있다. 파키스탄군은 2013년 중거리 지대지 미사일인 나스르(Nasr)를 시험 발사하는 데 성공했는데, 사거리 60㎞에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나스르는 사실상 인접국인 인도를 겨냥해 개발된 것이다.

이 밖에도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각축장이 됐던 유럽은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을 통한 ‘핵우산’ 정책을 공고히 하는 한편 핵보유국인 프랑스 같은 경우는 사정거리 500㎞에 달하는 신형 중거리 공대지 핵미사일을 탑재하는 게 가능한 전폭기를 프랑스 북동부 지역과 지중해 연안에 배치하기도 했다.

NPT 체제 허상에 불과

이러한 상황은 NPT 체제에 가입한 190개국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바로 “국제적인 핵무기 통제 체제가 결국은 허구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현재 미국 뉴욕에서 NPT 평가회의가 개최되고 있지만 분위기는 암울하기만 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NPT에서 핵무기 보유가 허용된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 뿐이고 NPT 조약은 이들 국가가 핵무기 기술 발전은 물론 핵실험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엄격히 지키고 있는 국가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핵무기의 성능 개량이 전체적인 핵무기 수를 줄이는 데 기여하므로 핵무기 감축을 통한 핵 위협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핵 위협을 줄이기 위한 국제조약들은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의 입장 속에 무력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6년 6월 유엔총회에서 결의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는 새로운 핵개발 및 부분핵실험금지조약(PTBT)에서 제외된 지하핵실험 등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고 있다. CTBT가 효력을 가지려면 조약에 대한 ‘서명’과 ‘비준’이라는 두 가지 절차를 지녀야 하는데 미국은 조약에 서명만 했을 뿐 지금까지 비준은 계속 미루고 있다. 핵무기 현대화 작업에는 그것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한 핵실험이 필연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3년 3월에는 노르웨이에서 ‘핵무기의 비인도성에 대한 국제회의’가 처음 열렸다. 일부 국가들이 강대국을 제어할 수 없는 NPT 체제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따로 국제회의를 개최해 핵무기를 비합법화하는 핵무기금지조약에 대한 노력을 촉구한 것이다. 현재 150개국이 참가하고 있는 이 국제회의는 2013년 이후 매년 열리고 있지만, 미국과 러시아 등 5대 핵보유국은 계속 참석을 거부해왔다. 결국 지난해 12월에 열린 제3회 국제회의에서야 미국과 영국이 처음으로 참가했고 올해 열리는 NPT 평가회의를 앞두고 핵무기 폐기와 관련한 치열논쟁을 벌였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비핵화를 위한 시민단체의 리차드 르네인은 포린폴린시에“핵 보유국들은 술 대신 핵폭탄에 중독된 상태”라면서 “이들이 표현하는 애매한 핵 감축 이행에 대해 우리가 언제까지 믿어야 되느냐”고 비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