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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테이에서 온 편지] 아이들에게 그날의 광주를 어떻게… 밤 지새우며 고민

입력
2017.10.20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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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찾아온 책쟁이들. 이들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지 고민을 거듭하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북스테이에 왔다.
부산에서 찾아온 책쟁이들. 이들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지 고민을 거듭하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북스테이에 왔다.

평화를품은집 앞마당에 작은 산밤들이 툭툭 떨어지는 가을이 시작될 무렵, 평생 책과 함께한 ‘책쟁이님’들 여덟 분이 부산에서 찾아왔다. 북스테이는 대부분 쉬어가는 일정으로 찾아오시는데 이 분들은 일 목적으로 왔단다. 과연 하룻밤으로 될 일인지 고민되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라며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평화도서관엔 가족이나 친구 등 그룹이 함께 방문할 경우, 준비된 ‘책보따리’를 소개하기도 한다. 책보따리 안에는 몇 권의 그림책, 그리고 그 그림책을 읽어야만 할 수 있는 간단한 놀이판,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안내 글이 들어있다. 책보따리는 ‘책놀이 보따리’인 셈이다.

책놀이 보따리는 그룹 구성원이나 성격에 따라 평화, 인권, 생태환경 관련 10가지 주제 별로 구분해 만들어 놓았다. 아주 어린 친구들의 경우 ‘다름이 보따리’, 군인들의 경우 ‘생명이 보따리’, 어르신들이 경우 ‘추억이 보따리’,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경우 ‘나를 찾아서 보따리’ 등을 제공한다.

이런 책보따리 프로그램의 존재를 잘 알고 오셨다는 부산의 책쟁이 여덟 분은 북스테이를 찾은 건 5ㆍ18 광주 이야기를 담은 홍성담의 그림책 ‘운동화 비행기’로 책놀이 보따리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하룻밤 자면서 ‘운동화 비행기’를 찬찬히 읽어 보고 아이들에게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고 ‘놀이판’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5ㆍ18, 민주주의, 저항정신 등의 키워드를 그림책 ‘운동화 비행기’를 통해 어린 친구들에게 어떻게 알려줄 것인지 먼저 방향을 잡아야 했다. 아픈 이야기로만 알려줄 수도 없고 끔찍했던 상황들을 날것 그대로 전해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홍성담 작가는 이 그림책을 만들며, 광주 한복판에서 고스란히 체험했던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했다고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했다.

운동화 비행기

홍성담 글, 그림

평화를 품은 책 발행ㆍ40쪽ㆍ1만4,800원

오늘은 5월18일

서진선 지음

보림 발행ㆍ32쪽ㆍ1만800원

창 밖 숲 속에선 귀뚜라미가 끝없이 울어대고 도서관의 밤은 깊어만 가는데 부산의 책쟁이들은 도대체 잠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책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는 어떻게 하지? 아이들이 이 단어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운동화 비행기’ 글을 수십 번 읽고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헤아리면서 이렇게 그림책을 꼼꼼히 읽어본 적이 없다며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15컷의 그림을 한 컷 한 컷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게 보였다. 본문 첫 페이지 그림은 주인공 새날이가 태어난 마을 그림인데 그 그림 한 컷에 담긴 이야기만도 무궁무진하다. 마을에 곧 불운이 닥칠 것을 암시하는 밤의 동물 부엉이 이야기, 마을 뒷산의 험석바위 이야기 등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그림을 보며 나눌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계엄군의 총소리에 놀라 도망가다 벗겨진 신발 한 짝을 집으려다 또 한 방의 총소리에 어이없이 무덤 속 주검이 되어 누워있는 새날이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하지? 광주시민들의 주검을 가득 싣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트럭에 대해서는 뭐라고 이야기하지? 고민스럽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손을 맞잡은 광주시민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희망의 불빛을 보게 되고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고 이생을 떠나는 새날이를 우리 아이들이 정녕 이해할 수 있을지, 역시 고민스럽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긴 지 오래다. 부산의 책쟁이들과 나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학생이었거나 어린아이였다. 누구는 부산에서 또 누구는 서울에서 1980년을 보냈다. 봄과 함께 찾아온 전국에서의 민주화 운동, 그때의 생생한 기억들이 몰려들었다. 80년 5월 광주를 담은 또 다른 그림책 ‘오늘은 5월 18일’에는 밤에 목화솜 이불로 창문을 가린 장면이 나온다. 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총알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단다.

이번 부산 책쟁이들과 함께한 하룻밤은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사위를 굴리며 이야기하다 보면 80년 광주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낱말을 찾아 설명한 글을 읽다 보면 그곳에서 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도 알고 함께하는 친구도 알게 된다. 놀이가 마무리될 무렵엔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할 것이다. 모두들 그림책 활동가답게 아이들의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을 더해 책놀이 활동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진한 하룻밤을 보낸 모두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 뜻 깊은 북스테이의 결과물로 그들이 다시 아이들과 함께 5ㆍ18 광주를 이야기하고 민주주의와 자기를 지키려는 저항 정신에 대해서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책을 통해 시대의 진실을 함께 나누기를 기대해 본다.

평화를품은집 평화도서관 황수경 관장ㆍ북스테이 네트워크(bookstay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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