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준석 기자

등록 : 2017.09.25 04:40
수정 : 2017.09.25 07:28

[청탁금지법 1년] “사적 모임 이젠 안 나가요” 몸 사리는 공무원

등록 : 2017.09.25 04:40
수정 : 2017.09.25 07:28

공직사회 획기적 변화

“주말 골프 접대도 뜸해져” 기업 접대비 감소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첫날이었던 지난해 9월 28일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종합민원사무소에서 민원인이 상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많이 달라졌죠. 예전엔 퇴직 선배(OB)들이 가끔 저녁도 사고 했는데, 이젠 서로 부담이 커 청탁이 오가지 않는 사적 모임에도 거의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봅니다. ”(세종시 경제부처 A국장)

청탁금지법 1년은 공직사회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꿔 놨다. 법 시행 후 공무원들은 외부인들을 만나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민원인을 만나 식사나 차 한잔을 하더라도 ‘얼마를 먹었지?’, ‘얼마나 남았지?’라는 계산을 머릿속에 달고 산다. 세종시 부처의 B국장은 “3만원, 5만원 같은 한도가 강렬하게 뇌리에 박히니까 늘 ‘얼마’에 신경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민원인이 작은 선물이나 간식 등을 사오는 풍경도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1년에 400조원의 나랏돈을 주무르는 ‘갑 중의 갑’으로 불리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념품이나 간단한 다과 등을 사 오는 관계자들이 종종 눈에 띄었지만 올해는 그런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매년 명절마다 국회 의원회관 1층은 각종 명절 선물을 담은 택배 박스가 넘쳐 났지만 올해는 추석을 앞두고도 매우 썰렁하다.

이처럼 1년 만에 공직사회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법 위반으로 얻는 것(비싼 식사나 선물)에 비해 ‘잃을 것’이 너무 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법 시행 초기 수사기관의 ‘일벌백계식 단속’에 걸려선 안 된다는 경계감이 공직사회를 지배한 게 사실이다. 법 위반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경우 인사조치 등 신분상의 불이익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강했다.

실제 지난 1년간 청탁금지법 위반과 관련해 관계기관에 접수된 신고 등은 111건에 불과했고 이 중 사법처리(기소)로 이어진 경우는 7건에 불과했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법무부 검사들에게 돈봉투를 돌렸다가 불구속 기소된 것이 외부에 알려진 거의 유일한 청탁금지법 위반 사례다. 법 시행을 전후로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공직자 등을 은밀하게 감시하는 ‘란파라치’가 많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로 포상금을 받은 건수는 아직까지 없다.

다만 이 같은 공직사회의 몸조심이 소극적인 일처리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경제부처 C과장은 “법 시행 1년이 지나도록 ‘직무 관련성’이란 개념이 여전히 모호하다 보니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며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로는 ‘외부인은 아예 만나지 말자’는 쪽의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아, 공무원들이 ‘우리만의 생각’으로 정책을 펼칠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걱정했다.

한국일보

기업의 대관ㆍ홍보 담당자들은 과거에 비해 과도한 접대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는 데 큰 점수를 주고 있다. 한 수입자동차 업체의 홍보담당 직원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됐다”고 반겼다. 대기업 홍보 관계자는 “골프접대비가 회사에서 처리가 안되면서 주말 골프 접대는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저녁 식사가 2차 이상으로 가는 일도 줄었다. 정보기술(IT) 업체의 홍보 임원은 “저녁모임을 갖더라도 식사를 겸해 1차에서 간단히 끝나는 정도”라고 말했고, 한 대기업 임원은 “업무 추진 시 김영란법에 어긋나지 않는지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고 말했다.

줄어든 홍보ㆍ대관 활동은 실제 기업 접대비의 감소로 이어졌다. 법 시행 후 기업의 접대비는 7.1%(서강대 지속가능기업 윤리연구소 조사)~28.1%(CEO스코어 조사) 감소했다. 정석윤 한양대 교수는 “기업은 법의 권위를 활용해 불필요한 교제 비용을 줄일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청탁금지법이 과거엔 자르기 어려웠던 부적절한 요청을 거절하는 데 요긴하다는 의견도 적잖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부탁하는 것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고 설사 거절해도 보이지 않는 앙금이 남았다”며 “이젠 김영란법 위반이라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면 되니 심적 부담도 없고 투명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다. 애플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플 신사옥에서 가진 아이폰X 공개 행사에 한국 기자만 초청 받지 못한 게 대표적인 예다. 10대 그룹 홍보 담당자는 “외국에서 제품 출시를 하거나 새롭게 조성한 인프라 현장을 소개하고 싶어도 제약이 커 아쉽다”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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