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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촛불의 분노와 불안

입력
2017.02.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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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정치부장 jkkim@hankookilbo.com

20일 오전 서울 북촌로 헌법재판소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5차 변론이 진행되고 있다. / 서재훈기자 /2017-02-20(한국일보)
20일 오전 서울 북촌로 헌법재판소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5차 변론이 진행되고 있다. / 서재훈기자 /2017-02-20(한국일보)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 분노와 불안이 교차했다. 체육관 선거로 권력을 연장하겠다는 전두환 정권의 호헌 선언이 분노를 불렀고 미래가 불안했다. 풋내기 대학생이 아스팔트에 나서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정확히는 그 두 가지 감정이 본질이었다. 6월 민주항쟁의 승리로 확보된 직선제 개헌 정국에서는 불안감이 더 커졌다. 길거리에 섰던 동시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운동장은 야권으로 크게 기울었지만 정치권이 4분5열하면서 그 해 12월 치러진 대선은 군부통치의 연장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조기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문득 1987년 상황이 떠올랐다. 지금도 운동장은 야권으로 급격히 기울어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형도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야와 민주정의당 1여의 당시 구도를 빼다 박았다. 호기심이 동해 “이러다 한국당이 어부지리 하는 건 아닙니까”라고 노회한 정치인에게 물었다. 그는 턱도 없는 질문이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하면 60일 안에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87년 10월27일 국민투표에서 직선제 개헌안이 확정되고 50일 만에 대선을 치렀던 일정처럼 촉박하다. 당시의 경험을 떠올려 개헌을 밀어붙이는 정치세력도 등장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다만 군부정권을 연장하려는 호헌의 반동이 개헌으로 저지 당했듯이 비선에 의한 국정농단 또한 헌재에서 확실히 심판 받을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걱정되는 것은 호헌 정국 당시 국민적 분노가 6.29민주화 선언으로 소멸된 뒤 나타난 혼란상과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이다. 탄핵안이 인용되면 실제 촛불정국과는 다른 국면이 전개될 공산이 크다.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사라진 마당에 분노와 좌절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남는 것은 미래에 대한 개인적, 집단적, 사회적 불안일 수 있다. 불안은 또한 아주 구체적인 모습으로 현실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당장 먹고 사는 현실의 문제이며, 사회적으로는 양극화와 성장의 고민이며 대외적으로는 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의 도전일 것이다.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하고 국민적 분노가 잦아든다면 불안에 기댄 민심의 요동도 충분히 예견해 볼 수 있다. 촛불에 올라탄 정권교체 바람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이 20~25%나 된다는 점을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40%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이 꺾이지 않고 있지만, 헌재 선고 이후 국면에서 부동층의 향배에 따라 판도의 대격변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보수 진영이 “탄핵 선고가 나면 잠자던 보수층이 대거 결집할 것”이라고 벼르는 것이나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탄핵이 인용되면 문재인 공포증이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게 예사롭지 않다.

이런 마당에 틀에 박힌 미래비전과 정책공약으로 민심을 잡아 집권하겠다는 대선 주자가 있다면 허망하기 그지없다. 막연한 적폐청산과 국가개조의 슬로건만으로는 포스트탄핵 국면에서 국민 불안을 넘어설 수 없다. ‘무조건 바꾸자’는 더 이상 유효한 구호가 될 수 없으며 수치마저 불분명한 일자리 공약이나 재원조달 방안이 불확실한 복지정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을 것이다. 비전은 분명해야 할 것이며 정책은 보다 구체적이고 담대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 또한 더욱 눈을 부릅떠야 할 것이다. 지난 대선 경제민주화 공약이 홍수를 이뤘지만 박근혜정부에서 모두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지향점은 특별히 주시해야 한다. 선친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에 나섰다 실패한 박근혜 대통령의 전철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누구의 명예회복과 신원(伸寃)은 권력의 목적이 절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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