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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차이나 프리, 그리고 길들여지기

입력
2017.11.26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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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리겠습니다.”(因爲理解 所以等待)

지난 봄, 롯데그룹이 서울 명동 곳곳에 내붙인 중국어 포스터를 보면서 정말 간절하긴 하구나 싶었다. ‘이해한다’ ‘기다린다’는 그 표현,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을 한 우리 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으로의 발길을 끊은 중국인들을 향해 애절하게 구애를 하는 참 절묘한 선택이다 생각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나 보다. 요우커(중국인 관광객)가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며칠 전 잠시 들러 본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은 평일 낮 시간이었음에도 입구부터 중국인들로 북적댔다. 특히 10층 면세점은 마치 금한령(禁韓令) 이전으로 되돌아간 듯했다. 주요 브랜드 매장마다 주로 중국인들로 보이는 쇼핑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명동 거리엔 다시 발길을 돌린 큰손들을 붙잡기 위한 화장품 매장 직원들의 호객 목소리가 모처럼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머지 않아 중국 당국이 3월 이후 허가하지 않고 있는 한국행 단체 관광 비자를 발급할 거란 얘기도 들린다. 그 때가 되면 명동 일대는 불법 주차된 중국인 관광버스, 팻말을 든 채 거리를 점령한 중국인들로 다시 몸살을 앓을 것이다.

견디다 못해 중국에서 롯데마트를 철수하기로 하면서조차도 ‘이해한다’고 했던 롯데로서는 그들의 귀환이 너무도 반가울 것이다. 신세계도, 현대백화점도, CJ도 다 같은 심정일 것이다.

더구나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가늠할 연말 특수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니 오죽할까 싶다.

어디 유통기업 뿐이겠는가. 관광, 화장품, 의류, 연예기획, 그리고 중국에 수출 기반을 갖고 있는 각종 제조업체까지 금한령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업계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는 수출의 중국 의존도는 26%에 달하고(현대경제연구원 2015년 기준), 국내 대기업의 중국 매출 비중은 18.1%(CEO스코어 지난해 1~3분기 기준)에 달한다고 한다. 이번 금한령 사태는 ‘차이나 프리(China free)’, 그러니까 ‘중국 없이 살아보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반가움이, 역으로 반갑지 않음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이들 기업은 중국에 대해, 또 요우커에 대해 더 강한 집착을 할 소지가 다분하다. 애타게 기다려온 요우커들이 다시 한국으로 발길을 돌려준 것이 너무 감사하고, 수출 시장을 다시 열어준 중국인들이 너무 고마워서.

이건 투자의 금기라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과 같고, 그래서 다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걸 기업들도 충분히 알고있을 것이다. 롯데가 인도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건 그런 처절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그런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통 큰 쇼핑에 대한,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넓은 시장에 대한 중독성은 어쩌면 마약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위안화를 뭉텅이로 싸들고 와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라며 진열 상품을 싹쓸이해가는 요우커들을 두고 비좁은 다른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아플 때는 깨달았다가 몸이 낫고 나면 다시 망각하는 게 사람이다.

중국이 이것저것 요구하며 사드 갈등이 아직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설령 사드 문제가 봉인되더라도 이런 치졸한 중국의 행태를 보면 그게 끝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북핵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언제 다시 상황이 악화되고, 언제 다시 그들이 등을 돌릴지 모른다. 그 사이 중독의 강도가 더 높아졌으니, 그때의 충격은 이번보다 더 클 것이다. 이렇게 요우커들이 한국으로의 발길을 끊었다가 재개하기를 반복한다면? 때마다 이해하고 기다리며, 우리는 그렇게 점점 더 중국에 길들여지게 될지 모른다.

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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