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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문화 이면의 여성 목소리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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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문화 이면의 여성 목소리에 주목"

입력
2016.03.2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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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논현동 북티크에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에서 김경미 이화여대 교수가 '자기록 : 여자, 글로 말하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23일 서울 논현동 북티크에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에서 김경미 이화여대 교수가 '자기록 : 여자, 글로 말하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분위기부터 달랐다. 뼈대 있는 집안 여자라면 당연히 남편 따라 죽어야 한다고 믿던 조선시대 얘기다. 그래서 자결하려고 칼을 꺼내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동생을 눈 앞에 두고 친언니마저도 “차마 내가 어찌 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할 수 밖에 없던 시대였다. 그 시대를 증언한 책, 풍양 조씨의 ‘자기록 : 여자, 글로 말하다’이 주인공이어서다.

그래서 23일 서울 논현동 콜라보서점 북티크에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편집부문 공동수상작 ‘자기록’ 북콘서트장을 가득 채운 청중은 여성이었다. ‘자기록’을 번역, 소개한 김경미 이화여대 교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청중 모두가 깊은 공감을 드러내면서 조선시대 여성의 삶을 함께 더듬어 나갔다.

‘자기록’은 열다섯에 청풍 김씨 집안에 시집간 풍양 조씨가 결혼 5년 만에 죽은 남편의 상을 치른 뒤 남편 죽음의 전 과정을 상세히 기록해둔 책이다. 2000년에 발견된, 오늘날로 치면 원고지 500매 분량의 이 책에서 김 교수가 주목한 것은 조선 후기 열녀 문화 뒤 편에 숨겨진 여성들의 목소리다.

김 교수는 ‘자기록’을 번역하면서 집안이나 시대 배경 등 여러 정황을 추적한 결과 상당히 풍족한 집안에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여성이 풍양 조씨라고 결론지었다. 할아버지가 서자여서 집안 자체가 강력하지는 않았음에도 벼슬이나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풍족한 집안이었다는 얘기다. 남편을 잃은 스무살 어린 여자라고만 하기엔 책의 내용, 문체, 구성 등이 너무 능숙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자기록’에서 주목하는 점은 대체 왜 썼을까다. 일종의 ‘정치적 전략’으로 볼 여지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의 독단이 강고해지면서 대량 생산된 것이 열녀다. 열녀 기록을 오늘날 시선으로 보면 황당한 경우가 많다. 남편 얼굴도 못 봤는데 남편이 죽었다고 따라 죽고, 모질지 못해 한번에 탁 죽지 못하니 보름이나 굶다 죽고, 애가 어리니 어느 정도 키워놓고 몇 년 뒤 남편 따라 죽는 경우도 있었다. 간혹 이런저런 이유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여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를 포기한다는 의미로 씻지도 닦지도 않고 거리의 부랑자, 거지처럼 살다 가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남성 조선 성리학자들은 이런 죽음에서 공포와 두려움은 싹 제거하고 빛나는 결단과 가문의 영광만 기록해뒀을 뿐이다. 여기에는 남녀라는 젠더 뿐 아니라 빈부에 따른 사회적 계급도 관여한다. 상층부 고관대작집에선 열녀가 드문 반면, 자신의 존재증명이나 열녀로 인한 경제적 이득에 골몰했던 향촌 양반들이나 일부 하층민들에게서 열녀가 지속적으로 배출된다.

김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자기록’이란 결국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 아니겠느냐고 보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많은 경우 실제 글을 적어나가다보면 상황에 대한 파악과 정리가 이뤄지고 행동 방향이 결정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자기록’의 결론은 ‘양자를 들여 대를 이어야 한다’는, 꿋꿋이 살아남겠다는 결심으로 마무리된다.

이런 열녀의 이면 얘기들이 나오자 여성 청중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글쓰기가 어떠했는지, 글쓰기 공동체가 있었는지, 다른 기록은 없는지 등 끊임없이 이어졌다.

마지막 남은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는 30일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작 ‘대추 한 알’을 두고 시인 장석주, 그림책작가 유리 등이 진행한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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