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주말의 선택]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만날까요?

알림

[주말의 선택]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만날까요?

입력
2018.07.14 10:00
0 0
일본 톱스타 아야세 하루카(왼쪽)와 사카구치 겐타로가 호흡을 맞춘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는 색감이 아름다운 장면들로 가득하다. 엔케이컨텐츠 제공
일본 톱스타 아야세 하루카(왼쪽)와 사카구치 겐타로가 호흡을 맞춘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는 색감이 아름다운 장면들로 가득하다. 엔케이컨텐츠 제공

한여름 무더위를 견디고 드디어 맞이한 주말. 늦잠과 낮잠과 밀린잠에 빼앗기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다. 조금 더 알차고 보람 있는 주말을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문화 생활이다. 이번 주 개봉한 영화 중에 눈에 띄는 한 편을 골랐다.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다.

흑백과 컬러가 서로를 물들이는 마법 같은 순간이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흑백과 컬러가 서로를 물들이는 마법 같은 순간이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줄거리

1960년대 일본 영화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공간 초월 판타지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는 동화 같은 상상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담백해서 때론 건조하게까지 느껴지는 일본 영화답지 않게 감성이 풍부하고, 재기 발랄하며, 사랑스럽다. 지난 2월 일본에서 개봉해 10억엔(약 101억원)을 벌어들였다.

영화감독 지망생 켄지(사카구치 겐타로)는 날마다 하루 일과를 극장에서 마무리한다. 우연히 발견한 고전 흑백 영화 ‘말괄량이 공주와 명랑 쾌활 삼총사’를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홀로 보는 것이 유일한 낙. 그는 영화 캐릭터 미유키 공주(이야세 하루카)에 푹 빠져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필름이 팔려서 이 영화를 더는 볼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오고, 켄지가 슬픔에 젖어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있던 순간, 극장 안을 뒤흔드는 벼락과 함께 미유키가 스크린을 찢고 현실 세계에 나타난다. 흑백인 모습 그대로.

미유키는 넘치는 호기심으로 총천연색 세상 탐험에 나선다. 켄지를 “시종”이라 부르면서 그가 일하는 영화 촬영장까지 따라와 켄지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분장실에서 화장을 하고 색을 갖게 된 미유키를 보고 또 한번 반한 켄지는 미유키의 세상 나들이를 함께한다. 물건이 가진 색깔의 이름들을 가르쳐 주고 배우면서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진다. 켄지는 특별한 장소에 미유키를 초대해 “곁에 머물러 달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미유키의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고 두 사람의 사랑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사랑은 서로 다른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흑백과 컬러가 서로 물들어가듯 말이다. 켄지와 미유키가 함께 바라보는 세상은 색감으로 충만해진다. 그 풍경들이 독특한 시각적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서로 상반된 두 캐릭터는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단순한 로맨스 영화로 접근해도 볼거리가 충분한 작품이다.

하지만 함의를 알면 더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켄지는 먼지만 쌓인 채 잊혀진 옛 필름을 영사기에 넣고 돌려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는다. 켄지가 동경하는 미유키는 곧 영화 그 자체다. 켄지와 미유키는 영화 세트 곳곳을 누비며 사랑을 키운다. 역동적이고 활기찬 당시 영화계 분위기가 스크린에도 담긴다. 로맨스 영화의 틀을 빌렸지만, 비유가 풍부한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필름시대에 대한 찬가다.

홀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켄지의 눈망울에서 ‘시네마 천국’의 토토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미유키는 ‘로마의 휴일’ 오드리 햅번의 오마주다. 영화 속 영화 ‘말괄량이 공주와 명량 쾌활 삼총사’도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시킨다.

일본의 라이징 스타 사카구치 겐타로.
일본의 라이징 스타 사카구치 겐타로.
일본 대표 배우 아야세 하루카.
일본 대표 배우 아야세 하루카.

연출

다케우치 히데키 감독은 자칫 엉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판타지 로맨스를 무리 없이 설득한다. 후반부에는 이야기 결을 진지하게 변주해 묵직한 울림까지 선사한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연출력이 한층 세련돼졌다.

다케우치 감독은 한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끈 만화 원작 ‘노다메 칸타빌레’ TV 드라마와 영화 시리즈를 모두 만든 연출자로 유명하다.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과장된 유머를 실사에서도 한계 없이 구현하는 과감하고도 호쾌한 연출이 특징이다. 고대 로마 공중목욕탕 설계자가 현대 일본 목욕탕으로 시간 이동하는 ‘병맛’ 코미디 ‘테르마이 로마이’로 2012년 상반기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코믹한 이야기이지만 뜻밖의 감동을 선사한 TV 드라마 ‘전차남’도 빠질 수 없다.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는 ‘노다메 칸타빌레’의 만화적 상상력과 ‘테르마이 로마이’의 판타지 감성, ‘전차남’의 은근한 감동을 모두 담은 작품이다.

주연

맹랑한 공주를 편견 없이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 켄지를 연기한 배우는 사카구치 겐타로다. 순박하고 다정한 미소가 해맑은 켄지 역에 맞춤이다. 섬세한 눈빛과 풍부한 표정으로 빚어낸 감성 연기가 돋보인다.

사카구치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핫한’ 라이징 스타다. ‘일본 박보검’으로 불린다. 2010년 모델로 데뷔해 2014년 연기를 시작, 20여편에 이르는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 ‘히로인 실격’ ‘너와 100번째 사랑’, 드라마 ‘중쇄를 찍자!’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등이 대표작. 그의 순정남 캐릭터에 반한 한국 팬도 적지 않다.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개봉을 앞두고 최근 내한했을 때 그가 무대인사에 나서는 시사회 티켓이 1분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리메이크된 드라마 ‘시그널’에선 이제훈 역할을,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선 정경호 역할을 연기했다.

도도하고 우아하며 조금은 제멋대로인, 하지만 남모르는 사연을 간직한 미유키 공주는 아야세 하루카가 연기했다. 그만의 독보적인 매력으로 스크린을 휘어잡는다.

아야세는 일본에서 최정상 인기를 누리는 톱스타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해피플라이트’ 드라마 ‘호타루의 빛’ 등 여러 출연작으로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연애세포가 건어물처럼 말라버렸다는 의미에서 연애에 관심 없는 여성을 비유한 신조어 ‘건어물녀’가 ‘호타루의 빛’에서 유래했다. 아야세는 ‘원조 건어물녀’인 셈. 한국이 사랑하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주인공 네 자매 중 첫째를 연기했다. 이 영화로 일본 아카데미상과 요코하마 영화제 등에서 잇달아 주연상을 받으며 연기파 배우로도 자리매김했다.

두 주인공에게 감춰진 비밀이 극 후반부에 눈물을 자아낸다.
두 주인공에게 감춰진 비밀이 극 후반부에 눈물을 자아낸다.

강추

마냥 가볍지 않은 로맨스 영화를 기다렸다면. 메마른 감성을 촉촉히 적시고 싶다면. 자극 없이 편안한 두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비추

영화에서 튀어나온 주인공이라니, 게다가 공주님이라고? 설정만 듣고도 손발이 오그라든다면. 무엇보다 집 근처에 롯데시네마(단독 개봉)가 없다면.

1960년대 일본 영화계의 풍경이 재치 있는 유머와 과장된 표현으로 맛깔스럽게 재현된다.
1960년대 일본 영화계의 풍경이 재치 있는 유머와 과장된 표현으로 맛깔스럽게 재현된다.

뜻밖의 발견

당대 톱스타 캐릭터인 슌도 류노스케(기타무라 가즈키)가 내뿜는 ‘미친 존재감’이 압권이다.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매, 강인한 남성미로 뭇 여심을 홀린 마성의 미남배우이자 쾌남아. 그가 등장할 때마다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최근 본 가장 인상적인 신스틸러다. 슌도는 영화 세트장을 제 집인 듯 누비고 다니는 미유키 공주에게 호기심을 보이는데, 미유키 공주는 그를 거들떠도 안 본다. ‘나한테 함부로 대하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에서 시작되는 은근한 호감. 허세만 부리는 줄 알았던 그가 켄지에게 진지하게 인생 조언을 건넬 때 뜻밖의 감동이 밀려온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