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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포커스] '흘러간 포맷' 전성기... 방송국 시간은 거꾸로 간다?

입력
2017.01.1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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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카메라 등 복사판 프로 잇달아

“시청자 취향 고려 안 해”… "지나친 안정 추구"

KBS2 ‘여걸파이브’ 및 ‘여걸식스’(위)와 JTBC ‘아는 형님’은 학교가 배경이라는 사실 외에도 전반적인 구성과 내용 등이 비슷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ㆍJTBC 제공
KBS2 ‘여걸파이브’ 및 ‘여걸식스’(위)와 JTBC ‘아는 형님’은 학교가 배경이라는 사실 외에도 전반적인 구성과 내용 등이 비슷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ㆍJTBC 제공

방송국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십 수년 전 유행했던 포맷을 차용한 예능프로그램들이 간판만 새로 고쳐 달고 최근 잇따라 다시 나오고 있다. 재탕이라도 새로운 재미가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익숙하다 못해 식상하게 느껴진다는 게 문제다. 과거의 영광에만 머무른, 게으른 답습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돌고… 돌고… 돌고…

강호동과 서장훈, 김희철 등이 출연하는 JTBC ‘아는 형님’은 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고정 출연자들에겐 재학생, 게스트에겐 전학생이라는 설정을 부여해 재학생이 전학생을 맞이하는 상황극과 퀴즈, 게임 등으로 꾸며진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KBS2 ‘해피선데이’의 한 코너로 방영됐던 ‘여걸파이브’ 및 ‘여걸식스’와 출연진 성별만 바뀌었을 뿐 콘셉트가 판박이에 가깝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포맷 표절이 아니냐’는 반응이 올라오기도 했다.

내달 3일 새로 시작하는 JTBC ‘내 집이 나타났다’는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MBC ‘러브하우스’를 연상케 한다. ‘러브하우스’로 이름을 알린 건축가 양진석도 참여해 더 강한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내 집이 나타났다’는 주택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 과정을 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자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연자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제2의 러브하우스’를 표방하고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의 감동 사연이 토대가 됐던 ‘러브하우스’의 영광을 재현하긴 어려워 보인다.

MBC ‘일밤’의 2부 코너인 ‘은밀하게 위대하게’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따라한 프로그램이다. 진행자 윤종신은 제작발표회에서 “속이는 결말로만 달려가는 프로그램은 아닐 것”이라고 했지만, ‘몰래카메라의 아버지’인 이경규가 없다는 사실만 과거와 달라졌을 뿐이다.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차별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시청률도 7~8%(닐슨코리아) 수준으로, 전작 ‘진짜사나이’가 10% 초중반대였던 것과 비교해 크게 떨어졌다.

문제는 ‘복고 포맷’ 프로그램들이 시대 흐름과 시청자들의 취향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라리 재방송이라면 모를까,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과거형 프로그램을 왜 보고 있어야 하는지 근본적 의문까지 품게 된다.

199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MBC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위)를 재탕한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MBC 제공
199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MBC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위)를 재탕한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MBC 제공

새로움 없이 부작용만 답습

과거의 창조적 재현이 아닌 복사판에 가까운 답습이다 보니 부작용도 고스란히 되풀이하고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몰래카메라’ 시절에도 지적 받았던 인권 침해와 가학성 논란으로 시청자 게시판이 시끄럽다. 개그맨 김영철은 평소 꿈꾸던 미국 할리우드 진출이란 미끼에 낚여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심적 괴로움을 겪어야 했고, 동생 천둥이 사기사건에 휘말린 상황에 놓였던 가수 산다라박은 동생 걱정에 전전긍긍하다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타인의 진지한 꿈을 가지고 이러는 거 재미도 없고 정말 몰상식하다”(s3****) “각본 짜는 사람들은 즐거울지 몰라도 당하는 사람 기분은 생각 안 하나? 다같이 웃어야 장난이지 상대방이 기분 나쁘면 장난이 아니라 폭력이다”(jo****) 등 불쾌감을 표하는 의견이 빗발친다.

김수로도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무리 방송 몰카지만 상황 파악은 하고 몰카를 해야지. 해외에서 일보는 사람을 서울로 빨리 들어오게 해서 몰카짓 하는 건 너무나 도의에 어긋난 방송이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리며 분노를 터트렸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겨냥한 듯한 표현이었다.

한석현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소속사와 합의된 몰래카메라라는 이유로 인격모독과 초상권침해 등을 용인해도 되는지 의문스럽다”며 “방송사와 연예인이 갑을관계인 경우가 많아 당사자가 문제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2000년 방영된 MBC ‘러브하우스’는 신동엽에 이어 2003년 박수홍(위)이 진행을 맡아 한 차례 부활했다. ‘제2의 러브하우스’를 표방한 JTBC ‘내 집이 나타났다’는 내달 3일 첫 방영된다. MBCㆍJTBC 제공
2000년 방영된 MBC ‘러브하우스’는 신동엽에 이어 2003년 박수홍(위)이 진행을 맡아 한 차례 부활했다. ‘제2의 러브하우스’를 표방한 JTBC ‘내 집이 나타났다’는 내달 3일 첫 방영된다. MBCㆍJTBC 제공

안정지향적 선택이 낳은 시대착오적 결과

방송사가 흘러 간 포맷을 자꾸 꺼내드는 건 ‘안정성’ 때문이다.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시도하기보다 시청층의 노령화를 감안해 손쉬운 선택을 하곤 한다. 과거의 향수를 간직한 중장년 시청자들에게 호소력 있는 과거 포맷을 손질해 내놓는 것이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방송사들이 안정적 시청률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만 만들려고 하다 보니 옛날 포맷을 그대로 가져와 스타급 MC 섭외에만 공을 들이는 안이한 기획만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인력 유출에 따른 기획력 부재도 주요 이유로 꼽힌다. 최근 지상파 방송사는 스타급 PD들의 이탈로 신선한 기획이 나오기 어려운 형편이고, 케이블채널과 종합편성(종편)채널에선 이적생 PD들이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에 검증된 포맷의 프로그램을 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방송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해외 포맷 수출에 대한 기대심리가 존재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 차례 인기를 얻은 포맷이기 때문에 신규 기획보다는 수출용 포맷을 만들기에 유리하다는 얘기다. 한 외주제작사의 관계자는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새롭지 않아도 해외시장에서 관심을 보일 만한 포맷을 재발굴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석현 팀장은 “해외에선 포맷 개발에 1년 이상 걸리는 일도 많다”며 “방송사들이 포맷 개발에 연구 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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