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억할 오늘] 루거우차오(노구교) 사건(7월 7일)

입력
2017.07.06 04:40
0 0
베이징 교회의 석조 아치교 루거우차오. 마르코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세상 어디에도 필적할 만한 게 없을 만큼 훌륭하다"고 적었다고 한다.
베이징 교회의 석조 아치교 루거우차오. 마르코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세상 어디에도 필적할 만한 게 없을 만큼 훌륭하다"고 적었다고 한다.

인간은 서로를 믿지 못해 계약서를 쓰고, 증인을 세우고, 법과 제도로 강제한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민주주의 국가의 모든 법과 제도가 사실 불신의 방증이다. 언제 어떤 계기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게 인간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인류가 공존하기 위해 행한 숱한 평화의 약속도 근세사만 보더라도 대부분 지켜지지 못했다. 약육강식의 자연법은 그래서 막강하고, 또 그래서 인간은 법과 제도, 조약과 그 너머의 윤리로 간신히 견제할 따름일 것이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루거우차오(蘆溝橋ㆍ노구교) 사건이 일어났다. 괴뢰 만주국을 수립하고 화북 지역을 장악한 사실상의 점령군인 일본 지나 주둔군이 베이징 서남쪽 교외의 돌다리를 사이에 두고 중국 국민당군과 긴장 속에 대치하던 때였다. 그날 일본군 대대병력이 예고 없이 야간 실탄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을 끝내고 철수한 일본군은 병사 한 명이 실종된 사실을 뒤늦게 확인, 상급부대에 그 사실을 보고한 뒤 중국군 측에 직접 수색 및 진상 조사를 벌이겠다고 통보했다. 불허로 맞선 중국당국과 군 및 외교 채널로 옥신각신하던 사이 양측의 자잘한 교전이 이어졌다. 그 사이 실종됐던 병사는 제 발로 귀대했지만 파장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였고, 전쟁과 훈공을 원하던 제국군 수뇌부에 그 사실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본 전시 내각은 9일 자정 맺어진 정전 협정을 무시하고 대규모 파병 결정을 내렸다. 2차 대전 태평양 전쟁의 서막이 된 중일전쟁이 그렇게 시작됐다. 파죽지세의 제국군대는 8월 상하이로, 11월 중국 정부 임시수도가 있던 난징으로 전선을 밀어붙이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난징에서는 약 2개월간 시민 5만여명을 포함 13만여명을 학살하는 ‘난징 대학살’을 자행했다.

전쟁에 흔히 쓰이는 표현처럼 작은 돌멩이 하나가 거대한 산사태를 일으킨 거였지만, 사안이 크든 작든 작은 돌멩이 하나도 허약한 신뢰의 균형을 깨는 데는 충분히 무겁다는 사실을 또 한번 입증한 셈이었다. 프랑스 작가 장 클로드 갈의 그래픽노블 ‘죽음의 행군’(문신원 옮김, 문학동네) 속 단편 ‘대성당’은, 호수 위에 구축된 대성당이 돌로 된 잔 하나의 무게로 균형을 잃고 물속으로 허물어지는 극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인류 문명이 그런 기적 위에 서 있는지 모른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