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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문학 서적에 빠져보자

입력
2014.11.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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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잘 산다’는 의미가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는 것과 동일시되면서부터 인문학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경제가 지상 명령이 되다 보니 돈이 되지 않는 것은 관심에서 멀어졌고, 대학에서도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만 학생들이 몰리면서 대학 안에서 안주하는 인문학은 한계를 드러내 인문학이 위기를 맞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너도나도 돈을 목표로 달렸고 지금도 달리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자신과 조용히 마주 앉아보니 거기 너무나 낯선 ‘내’가 있다. 꿈과 멀어지고 일벌레, 돈벌레가 된 단세포적인 자화상이 거기 있다. 아, 이게 아닌데. 이렇게 살려고 하진 않았는데. 허전하고 슬프고 안타깝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고민과 마주할 것이다. 그 때문인지,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여전히 홀대 받고 있지만 다행히 일반인들의 관심은 높아졌다.

한동안 주춤하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인문학이 일반 대중과 기업과 공공부문 속으로 파고들어 온ㆍ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작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 까닭은 알아듣기 어려운 이론 강의가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을 위한 인문학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도 많이 생겼다. 노숙자를 대상으로 하는 ‘클레멘트 코스’도 전국 곳곳에 개설돼 인문학을 만난 노숙자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다시 용기 있게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빈곤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취재 중이던 미국 작가 ‘얼 쇼리스’가 살인 사건에 연루돼 복역 중인 여죄수와의 문답에서 힌트를 얻어 시작된 ‘클레멘트 코스’는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클레멘트 코스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성찰적 사고능력이 필요하며, 그 능력은 인문학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 교육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방송통신대에 입학한 노숙인이 있다는 말도 들었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목적에서 개설된 인문학 교육과정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글자 그대로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자기성찰의 물음과 진지하게 마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가치 있고 정의롭게 살고 있는가, 이웃과 함께 행복해지려고 애를 쓰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한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사람들은 인문학 강좌로 몰리는지 모른다. 거기에는 알아듣기 어려운 이론 강의가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서 뭔가를 깨달은 사람들은 숙제를 마친 듯한 후련함을 느끼면서 조금씩 인문학과 가까워진다. 인문학이라고 해서 반드시 칸트나 니체를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은 등불 하나를 켤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경영과 마케팅 및 광고에 인문학적 요소가 가미된 것은 오래 전이다. 고객들은 상품 자체뿐만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가 담긴 상품을 선호하게 됐다. 우리 가까이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해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광고가 더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문학의 ‘바람’에 대해 찬반 의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다. 다만 관심이 높아진 것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런 바람이 정말 바람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릴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바라건대 이 바람이 사방으로 불어 인문학이 다시 꽃을 피웠으면 한다.

올 가을에는 나의 존재와 삶을 성찰하는데 도움이 되는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고 강연도 자주 들으며 인문학의 바다에 풍덩 빠져보자. 마음속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솟아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구해보며 읽기를 권한다. 우선 집에 있는 책장 한쪽에 잊힌 채 꽂혀 있는 인문학 서적을 꺼내 먼지를 털고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뜻밖의 보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경수 한국방송통신대 인문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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