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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식물원 카페로, 산소방으로… ‘NO 더스트족’의 생존법

입력
2018.05.02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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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청정기로도 못 버텨"

코 마스크로 이중 차단

아침저녁으로 습식청소

틸란드시아ㆍ에어플랜트…

공기정화식물 키우기는 필수

"미세먼지 농도 심한 날엔

삼겹살 굽는 대신 수육"

예방 위한 생활 습관 노력도

지난달 15일 경기 남양주시 한 식물원 카페에서 사람들이 보드게임, 그네놀이 등을 즐기고 있다(왼쪽사진). 지난달 28일 서울 동대문구 산소방에서 한 남성이 산소캡슐이 들어가고 있다. 신지후 기자
지난달 15일 경기 남양주시 한 식물원 카페에서 사람들이 보드게임, 그네놀이 등을 즐기고 있다(왼쪽사진). 지난달 28일 서울 동대문구 산소방에서 한 남성이 산소캡슐이 들어가고 있다. 신지후 기자

#. 지난달 15일 경기 남양주시 산자락의 한 식물원 카페. 서울 중심부에서 차를 타고 1시간가량을 달려야 하는 데다 좁은 길을 굽이굽이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이지만, 식물들이 내뿜는 건강한 산소를 마셔보겠다며 모인 수백명의 사람들로 약 1,100㎡ 규모의 공간이 꽉 찼다. 이곳에선 음료만 구입하면 온실식물원 내부에 마련된 여러 공간에 자리를 펴고 보드게임이나 그네 놀이 등을 할 수 있는데, 도심에선 만나기 힘든 깨끗한 공기를 접촉할 수 있으면서 야외 소풍놀이 기분도 낼 수 있어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날이면 전국 곳곳의 사람들이 몰린다. 이날 식물원 카페를 찾은 최모(42)씨는 “바깥 공기가 너무 나빠 아이들을 함부로 데리고 나갈 수 없을 때면 종종 이곳에 들른다”고 말했다.

#. 수도권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을 기록한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한 산소방. 곳곳에 놓인 5개의 산소캡슐이 잇따라 모여드는 손님들로 빌 틈이 없었다. 산소캡슐은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면 고압 산소를 주입해 주는데, 이곳 역시 미세먼지 등 각종 대기오염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인기다. 40분 동안 캡슐에 들어가 산소를 마시는 데 2만원 정도를 내야 하지만, 다소 비싼 가격은 상관없다는 게 방문객들의 평가다. 이날 산소방을 찾은 한 40대 여성은 “수시로 산소방에 오는데, 여기라도 찾지 않으면 미세먼지 때문에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 건강을 망쳐버릴 것만 같다”고 말했다.

매년 봄이 시작하기 무섭게 덩달아 찾아오는 미세먼지의 공습에 “공기청정기로만은 못 버티겠다”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조금의 먼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일명 ‘노더스트(NO-DUST)족’이다. 일반인의 시각에선 조금은 유난스럽고 예민해 보이지만 연일 짙어지는 미세먼지 농도와 이에 따른 건강 악화를 고려하면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생존법'이기도 하다.

고기능 방진마스크ㆍ정화식물은 필수품

“미세먼지(PM10)는 60㎍/㎥, 초미세먼지(PM2.5)는 30㎍/㎥…” 자ㆍ타칭 노더스트족인 직장맘 백선례(55)씨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미세먼지 측정기와 습도계가 나타내는 수치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집안에 설치된 공기청정기만 거실과 방 3곳 각각 1대씩 총 4대. 집안 미세먼지 농도를 PM10은 30㎍/㎥, PM2.5는 10㎍/㎥ 이하로 관리해보겠다는 목표로 매일 수치를 잰 뒤, 아침저녁으로 ‘습식청소’와 ‘강제환기’를 한다. 강제환기란 집안 창문과 문을 모두 닫고 일부분만 열어 그 틈에 공기청정기를 갖다 대는 방법으로, 외부공기가 공기청정기를 통해 정화돼 유입되기 때문에 내부는 깨끗한 공기로만 가득 차게 되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하지만 노더스트족에겐 보편적이다.

백씨를 비롯한 노더스트족에게 일상화된 것은 또 있다. 언뜻 보면 유난스럽게 생각되는 방진 마스크나 코 마스크(콧속에 필터를 끼워 이중으로 미세먼지 차단)를 사용하는 것. 회사원 고진택(36)씨는 “황사마스크를 사용해도 코나 얼굴 부분이 조금 들뜨면 효과가 뚝 떨어진다고 해 얼굴에 단단히 고정되고 호흡도 쉽게 해주는 방진마스크를 얼마 전 ‘직구(해외에서 직접구매)’했다”며 “가격이 일반 마스크의 5배가 넘지만 해를 넘길수록 미세먼지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더 늦기 전에 돈을 들였다”고 말했다. 언제든 깨끗한 산소를 마실 수 있도록 하는 휴대용 산소캔, 미세먼지를 닦아내는 알코올 티슈 등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제품들도 이들에겐 ‘필수품’으로 여겨진다.

노더스트족이 뿌연 하늘보다 더욱 신경 쓰는 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가 돌고 도는 ‘실내 공기’다. 노더스트족은 주로 공기 정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식물을 꾸준히 가꾸는 것을 실내 공기 정화를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추천한다. 실제 이들의 방 곳곳에는 사람의 수염 모양을 닮은 틸란드시아나 천연이끼인 스칸디아모스, 에어플랜트, 금사철 등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직장맘 김진영(54)씨는 “과거 유행했던 산세베리아나 고무나무 외에도 새로운 식물들이 많은데, 가격도 3,000~1만원대로 저렴하기 때문에 미세먼지가 심했던 3월 중순 8개 정도 구입해 거실과 아이들 방에 놨다”며 “집을 비우면 공기청정기를 상시로 틀어놓기 힘들기 때문에 내린 특단의 조치”라고 귀띔했다.

기성품 대신 DIY로…”전문 지식 공유하자” 오프라인 모임까지

“기성품은 못미덥다”며 직접 미세먼지 예방ㆍ제거 제품을 만들어 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자동차 에어컨 필터를 자체 제작해 사용한다는 이현기(36)씨는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본대로 공기청정기에 쓰이는 헤파필터와 문풍지를 활용해 에어컨 필터에 한 번 덧댔더니 PM2.5가 쑥쑥 내려가더라”며 “에어컨이나 히터를 가동할 때 외부공기가 많이 활용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필터가 설치되지 않으면 바깥보다 안 좋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운전을 해야 한다는 걱정이 들어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인 노력을 넘어 보다 전문적인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오프라인 단체를 꾸려 활동하는 노더스트족들도 많다. 온라인 카페인 ‘미세먼지대책을촉구합니다(미대촉)’에서 오프라인으로 나온 이들이 대표적인데, 미세먼지 농도 수치부터 주요 연구자료를 함께 모으고 공부하는 일부터 정책 마련을 촉구하는 1인 시위까지 함께 하고 있다. 이미옥 미대촉 대표는 “카페 운영진 20여명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일반 회원들도 카페에서 일정과 정보를 공유하며 오프라인으로 나와 자발적으로 활동한다”고 말했다. 노더스트족에는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도 동참하고 있는데, 경남 창원시 현동초는 2016년 하반기부터 미세먼지 대응 동아리를 만들고 미세먼지 알림 시스템ㆍ미세먼지 안전지도 제작 등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미세먼지 배출, 우리부터 DOWN!”

미세먼지를 단순히 예방하고 제거하는 데서 나아가 미세먼지 발생 자체를 최소화하는 생활 습관을 유지한다는 점도 노더스트족의 특징. 온라인 ‘맘카페’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면서 요리하는 방법을 공유해 농도 수치를 ‘인증’하는 글들이 다수 게재돼 있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면 튀김이나 구이 요리를 하는 것은 금물, 쿠킹 퓸(Cooking Fumesㆍ요리 시 발생하는 연기) 발생 억제를 위한 요리시간 최소화는 필수다. “미세먼지 농도 ‘나쁨’ 이상인 날은 삼겹살을 굽는 대신 압력솥으로 수육을 해먹자” “요리 시간을 30분 이내로 줄이자” “고농도 미세먼지가 예고된 전날에는 최대한 요리를 피할 수 있도록 카레, 짜장 등을 미리 조리해 냉동해놓자” 등 각종 비법들도 공유한다.

이 같은 노력은 소각 과정에서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마스크 재활용하기, 전기차 이용하기 등 환경 보호 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현기씨는 “노더스트족은 일상 속 미세먼지 예방과 제거에 초점을 맞추고는 있지만, 결국 지구 환경 전체를 나아지게 하는 데까지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며 “너무 유난하고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주변인들이 많은데, 이렇게 살아가는 배경에 공감해주고 동참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직장맘 김진영씨가 서울 자택 거실에 공기정화식물 수염틸란드시아를 매달고 있다. 김씨 제공
직장맘 김진영씨가 서울 자택 거실에 공기정화식물 수염틸란드시아를 매달고 있다. 김씨 제공
직장맘 백선례씨가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통해 지하철(왼쪽), 사무실 등에서 미세먼지를 측정해 기록하고 있다. 백씨 제공
직장맘 백선례씨가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통해 지하철(왼쪽), 사무실 등에서 미세먼지를 측정해 기록하고 있다. 백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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