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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눈 앞에 없는 의사

입력
2016.10.0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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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방본부 내에 있는 119 상황실에서 전화로 여러 가지 응급상황에 자문을 주는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 중에는 민간인에게 의료상담을 해주는 업무도 있다.

119를 통해 자신의 증상이나 병에 대해 자문하는 사람은 제법 많다. 민원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급박한 상황에 닥쳤을 때, 공신력 있는 기관에 전화해서 자신의 상태를 별도의 비용 없이 자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전화로만 이루어지는 의료상담은 자주 한계에 부딪힌다. 저번엔 이러한 환자가 있었다.

평소 건강하던 젊은 여자였다. 방금 갑자기 숨이 가쁘다가 괜찮아졌는데, 지금 등 뒤쪽 한 부분이 심하게 결리고 아프면서 다시 숨이 막힌 듯한 느낌이 들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그래서 이게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가 평소 건강했다는 점과, 아픈 위치와 묘사를 듣고서는 단순 근육통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검진도 할 수 없고, 심전도나 엑스레이 결과도 없이 목소리만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공식적인 의견만을 제시해야 하는 민원 전화였으므로 나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근육통 같아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고 혹여 다른 병일 수도 있으니 병원에 빨리 가서 진단을 받아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반문이 돌아왔다.

“진단도 못하고 별다른 도움 없이 그냥 병원에 가라고 할 거면 이 의료상담은 왜 있는 건가요?”

“저는 평생 응급실에서 살았습니다. 환자분은 근육통으로 보이지만, 의심할 수 있는 진단명이 당장 몇 십 개가 더 있습니다. 이것들은 병원에서 검사로 차근차근 감별해서 진단해야 하는 것이죠. 적어도 의사가 직접 검진해 보아야 확실한 말을 할 수 있고, 필요한 검사도 처방 낼 수 있어요. 병원은 그 시스템 때문에 있는 겁니다. 여기서 근육통에 관한 설명을 드렸다가 아닐 경우엔 오히려 더 위험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고 의심되는 병을 유선상으로 다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병원에 빨리 가야 한다는 말은 전문가가 모든 상황과 안전을 고려한 소견이며, 이게 유선상으로만 이루어지는 상담과 제 위치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한계입니다.”

환자는 납득하고 전화를 끊었다.

여기서 내가 하는 업무는 현재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원격의료의 원시적인 형태다. 하지만 이처럼 종종 공식적인 의사가 전화를 응대한다는 신뢰성과 직접 환자를 보지 못한다는 진료상 한계의 괴리에서 환자들은 종종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분명한 사실은 의사가 되기 위해 맨 처음으로 배우는 진찰의 기본은 환자를 직접 마주해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들은 병원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환자를 직접 만났을 때 종합적으로 얼마나 큰 정보가 주어지는지 알기 때문에 전해 듣거나 수치로만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환자를 마주해야 한다’는 이 원칙은 의학의 기원부터 몇 천년을 지켜져 왔다.

게다가 의학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가치는 안전이다. 어떤 질병이 의심될 때 때론 과한 각종 검사를 시행하는 것은 99명의 음성 환자가 있어도 1명의 양성 환자를 찾아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여태껏 원격의료를 격렬히 반대해온 것도 이러한 사항들 때문이다. 의사들은 기본에서 멀어진 이 의료가 얼마나 불완전할지, 또한 진료상 한계에 부딪혔을 때 환자들을 응대하고, 때로는 비난받을 것도 자기 자신들임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반대 목소리를 내 왔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인지 원격의료는 시범사업부터 진행되고 있다. 원격진료의 한계를 현장에서 절감하고 있는 의사로서, 직접 환자를 마주할 의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이 사업이 부디 모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되었으면 바라본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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