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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유산

입력
2017.10.24 14:5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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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발전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글쓰기 수업에서 즐겨 쓰는 주제이다. 나 또한 과학기술 글쓰기라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주제로 글을 쓰게 한다. 나는 이 주제만큼은 2주를 할애한다. 첫 주에는 자기 의견을 쓰고 둘째 주에는 반대편의 입장에서 글을 쓰게 한다. 내 주장의 근거를 잘 아는 것만큼이나 상대방 주장의 요지와 근거, 논리적 구조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상대방을 논쟁에서 제압하기 위한 지피지기의 맥락에서 취하는 방편이 아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주장을 잘 이해할수록 쓸데없는 말싸움을 피하고 생산적인 논의를 기대할 수 있다. 국가정책을 결정할 때에도 이런 원리를 도입할 수는 없을까?

신고리 5ㆍ6호기를 계속 건설할 것인가의 여부를 시민들의 공론으로 결정하겠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공론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탈원전의 문제를 생산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구나 싶어서 무척 반가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론화위원회는 나의 이런 기대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나는 신속한 탈원전을 지지하는 입장이라 59.5% 대 40.5%로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재개를 선택한 공론화위원회의 최종 결과가 달갑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아주 불편하지는 않다. 석 달이라는 공론화 과정 기간이 아주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충분히 납득할 만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이나 국정교과서 정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을 때에는 내가 지지하는 의견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전혀 존중 받지 못했다. 존중은커녕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종북 좌파’로 내몰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반면 정부정책에 찬성하는 의견은 여론을 조작하거나 곡학아세하는 전문가를 동원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결정된 정부정책을 수긍하거나 적어도 이해할 여지는 극히 드물었다. 오히려 저항감만 커졌다.

반면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는 찬반양론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다. 내가 직접 내 의견을 위원회에서 펼칠 기회는 없었지만 나보다 훨씬 뛰어난 분들이 나 같은 사람들을 대신해 왜 원전건설을 지금 중단해야 하고 탈원전의 길을 가야 하는지 충분히 피력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공평함’에는 문제가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원자력업계가 정부와 언론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여론을 주도해 왔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최종결과가 이렇게 나오고 보니, 위원회 바깥에서 나도 미력이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이 하지 못했음이 후회스럽다.

나는 이번 공론화위원회가 두 개의 유산과 하나의 과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합의기제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가장 큰 성과이다. 몇 달에 걸쳐 평화적인 방법으로 합법적 절차를 통해 최고 권력자를 몰아낸 촛불혁명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마다 대화와 토론, 논쟁을 하기보다 극단적 물리력으로 대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공론화 과정이 모두에게 만족스럽거나 완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민참여단의 선정방식이나 구성, 숙의과정과 기간 등을 두고 각자 할 말이 많을 수도 있다. 이는 새로운 제도를 정착시키는 각론이다. 아직은 미숙한 점이 있더라도 모두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새싹이다.

두 번째 유산은 전문가와 시민의 역할 재정립이다. 공론화 과정에 들어갈 때 일각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어떻게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에게 맡기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에서 최종결정권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보통의 공화국 시민들에게 있다. 전쟁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군인이 아니다. 외국과 FTA를 체결하려면 국회비준을 거쳐야 한다. 국가에너지 정책이 정말로 중요한 문제라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전문가들끼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의 역할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최종 결정권자인 국민 또는 그 대리인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공론화 과정의 근본적 한계도 짚어봐야 한다. 과연 비전문가 일반인이 대단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학기술적 내용을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은 어느 정도일까? 공론화를 통한 결정이라는 방식을 선택한 이상 비전문가와 전문가 사이의 간격이라는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다만 나는 대중적 교양과학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이 간격을 크게 완화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전반 곳곳에 스며있는 지금, 그 어떤 사회적 갈등도 과학기술을 떼어 놓고서 해결할 수 없다. 일상적 대중 교양과학 교육이 단지 개인의 지적 만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올바른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이번 기회에 문재인 정부가 교양과학 교육에도 큰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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