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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적용' 김연수 김애란 해외 초청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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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적용' 김연수 김애란 해외 초청도 막았다

입력
2017.10.30 13:1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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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왼쪽부터)과 김연수 이시영 신경림 등 작가들이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올라 각종 해외 교류사업에서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애란(왼쪽부터)과 김연수 이시영 신경림 등 작가들이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올라 각종 해외 교류사업에서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 유명 소설가 김연수, 김애란씨는 2015년 미국 듀크대학에서 열린 ‘북미한국문학행사’에 초청받았지만, 미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북미한국문학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에 초청된 한국 작가에게 항공비와 체류비를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번역원)이 지원 자체를 거절해서다. ‘영어로 번역 출간된 작품이 없다’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였지만, 실은 상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불허 의사가 작용했다. 번역원 담당직원은 듀크대 관계자에게 “이번 정부가 작가들에 대한 검열을 까다롭게 하고 있어서 양해 부탁 드린다”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

#2. 이시영 시인은 2016년 미국 하와이대-UC버클리대 한국문학행사에 초청됐지만 번역원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지원을 거절했다. 번역원 담당직원은 버클리대에 보낸 이메일에서 “정부에서 이시영, 김수복 시인 파견을 지원하는데 허가를 해주지 않아서 더욱 곤란한 상황”이라고 적었다. 버클리대는 항공료 등 번역원이 지원하고는 했던 비용을 모두 자체적으로 부담하면서까지 이 시인을 초청해 행사를 치렀다.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국가간 문화 교류사업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정부가 국립극단 등이 제작한 공연에 대해 광범위하게 개입했던 사실도 문서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

문체부 산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진상조사위)는 30일 서울 광화문 KT빌딩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공연, 출판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문체부는 2015년부터 2016년까지 특정 문인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라고 번역원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번역원은 신경림 이시영 정끝별 시인, 박범신 김연수 김애란 소설가 등 유명 문인들을 해외교류사업에서 배제했다.

2015년 국립극단이 제작한 연극 '개구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카멜레온'으로 풍자해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에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5년 국립극단이 제작한 연극 '개구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카멜레온'으로 풍자해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에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정부가 연극 ‘개구리’ 등 국공립 예술단체 제작 공연을 사전에 검열하고, 특정인 출연을 배제시켜온 사실도 문건을 통해 처음 확인됐다. 2013년 9월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가 작성한 보고서 ‘국립극단 기획공연 ‘개구리’ 관련 현안 보고’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카멜레온’으로 풍자한 내용 등을 손진책 당시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통해 수정하도록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향후 조치계획’에 ▦향후 국립극단 작품에 ‘편향된 정치적 소재’는 배제토록 강력 조치 ▦2013년 국립극단 후속 작품에 정치적 소재의 내용은 배제토록 조치 ▦全(전) 국립예술단체 주관 공연에는 정치적 편향의 내용은 배제토록 협조 요청 ▦現(현) 국립극단 예술감독 교체 추진도 명시했다. 이양구 진상조사위 조사위원은 “조사 결과 ‘개구리’를 만든 박근형 연출가가 예술감독으로부터 초연 전 작품 수정 요구를 받았고, 실제 작품을 고쳤다고 밝혔다”며 “예술감독의 의견인 줄 알았지만 상부 지시인 줄은 이번 조사에서 알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서 열린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관련 입수 자료 분석 브리핑에서 김준현 진상조사소위회 위원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서 열린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관련 입수 자료 분석 브리핑에서 김준현 진상조사소위회 위원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체부 산하기관장이 블랙리스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아는 수준을 넘어, 실행에 적극 가담하기도 했다. 2016년 10월 2일 국회 확인감사를 앞두고 작성된, 박명진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위원장과 김종덕 문체부 장관의 면담 참고 자료는 박 위원장이 블랙리스트 실행에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박 위원장은 면담 참고 자료에 문예위 지원사업에 관한 블랙리스트 적용과 관련해 “심의위원 탈퇴 혹은 거부 움직임 가능성(박계배 의견)”, “비밀리에 진행 불가능: 현재의 문제 폭넓게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음(박계배 지적)” 등 박계배 예술인복지재단 대표이사의 의견을 자세히 명기했다. 문예위 사업과 직접 관계없는 박 대표가 블랙리스트 현장 동향 파악에 관여하고, 대응을 논의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문화가 있는 삶 추진단’에서 활동했다. 2014년 10월부터 예술인복지재단 대표이사로 재직해 이듬해 재단 심의위원 위촉과정에서 애초 위촉된 6인을 전원 교체시키는 등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적용에 적극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진상조사위는 “정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는 (특정인에 대한 지원을 원천 배제한)사전, (특정 사업 지원인 명단에서 제외자를 추린) 사후 두 종류로 작성됐으며 개인, 단체를 망라해 있다”며 “시기별, 사업별로 지속적으로 수정됐기 때문에 구체적인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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