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표향 기자

양승준 기자

등록 : 2017.12.26 16:29
수정 : 2017.12.26 18:41

[별별리뷰] 2017년에 불러낸 ‘1987’의 함성

6월항쟁 30주년...박종철에서 이한열, 그리고 2017년

등록 : 2017.12.26 16:29
수정 : 2017.12.26 18:41

영화 ‘1987’에서 박종철 열사 유족이 열사의 유해를 강에 뿌리며 눈물 흘리는 장면. 분노와 슬픔에 목이 메어 온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1987’(27일 개봉)은 박종철 열사에서 이한열 열사로 이어진 1987년 당시의 민주화 열망을 뜨겁게 품어 낸 작품이다. 6월 항쟁 3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지난 겨울 촛불의 함성을 떠올리게 해 일찌감치 ‘촛불 영화’라는 수식어로 불려 왔다. ‘지구를 지켜라’(2003)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로 비범한 연출력을 증명한 장준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올해 극장가를 마감하는 마지막 영화다.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여진구)이 고문을 당해 사망한다. 대공수사처 박 처장(김윤석)은 시신을 화장해 증거를 인멸하려 하지만, 서울지검 공안부장인 최 검사(하정우)는 고문치사임을 직감하고 사인을 밝히기 위해 시신 부검을 밀어붙인다. 그럼에도 경찰은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단순 쇼크사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시신을 처음 목격한 대학병원 의사와 부검을 진행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는 외압에도 양심을 굽히지 않고, 이 사건을 취재 중이던 윤 기자(이희준)는 보도지침으로 언론의 입이 틀어 막힌 상황에서도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다. 박 처장은 고문에 가담한 조 반장(박희순) 등 형사 두 명만 구속시키는 선에서 사건을 끝내려 하지만, 수감된 조 반장을 통해 사건 가담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조카인 87학번 신입생 연희(김태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이 담긴 메모를 재야인사에 전달한다.

◆‘1987’ 20자평과 별점

20자평별점
김형석 영화평론가아직도 살아 있는 그때의 숨결. 반드시 극장에서 수많은 관객들과 함께 공감하시길.★★★★
양승준 기자1987, 그 무게를 견디다 진중하게. ★★★
김표향 기자가슴에 다시 켜지는 촛불. ★★★★☆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배우 김윤석은 실제 세계에선 박종철 열사의 고등학교 2년 후배다. 허나 영화 ‘1987’에선 시대의 악역을 맡아 영화를 빛낸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 현대사 영화를 한데 모은 묵직한 직구

2017년뿐만 아니라 지난 30년을 마무리하는 영화. 최근 3~4년 동안 한국 현대사를 다룬 여러 영화들도 결국은 ‘1987’로 수렴된다. 이 작품은 단지 ‘1987년’이라는 시간의 단면을 보여주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1987’은 ‘역사’의, 역사를 변화시키는 ‘혁명’의, 혁명을 가능케 하는 ‘투쟁’의 중심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당시 사람들에게 폭력과 억압의 시대는 어떤 대상이었고, 그 안에서 어떤 의지를 지니고 각자 역할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던 힘들은 어떻게 하나로 모아지고, 그 결과물은 무엇이었는가. 이 쉽지 않은 역사의 과정을 ‘1987’은 두 젊은이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며,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그때 그 거리에 서 있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지나치게 힘을 주지 않는, 괜한 장르적 장치로 드라마의 힘을 상쇄시키지 않는, 철저히 사실에 입각해 정공법으로 돌파한 작품. 장준환 감독은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부터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거쳐 ‘1987’까지 ‘저항’을 이야기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엔 훨씬 넓어진 시선으로 드라마를 바라본다는 것. 김우형 촬영감독의 카메라도 언급할 만하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최 검사 역을 맡은 하정우는 특유의 활기로 영화에 숨통을 틔우며 관객을 1987년으로 안내한다.

1987년에서 2017년을 놓치지 않다

하얗게 쌓인 눈이 유난히도 스산했던 임진강. 아버지의 손에 뿌려진 박종철의 유해는 흘러가지 못한다. 억울함이 사무쳐 물줄기를 붙잡는 듯 강에 엉킬 뿐이다.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답니다.” 현대사에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이 거짓말을 시작으로 영화는 30년 전 민주화 운동의 아우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속속들이 알려진 역사적 이야기에 긴장감을 높인 건 김윤식의 열연이다. 경찰청 대공수사처장 박 처장 역을 맡은 그는 당시 폭력의 광기를 온몸으로 증명한다. 왜 지금 1987년을 복기하는가. 가상의 캐릭터 연희가 30년을 잇는 다리 역을 해 울림을 준다. 연희는 1987년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386세대이자, 2017년 촛불을 들고 부정한 정권을 몰아냈던 현 청춘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현실과 가상을 버무려 몰입을 키운 ‘1987’의 만듦새는 ‘택시운전사’보다 분명 한 수 위다. 문제는 2부, 이한열 열사 대목이다. 배우 강동원이 이 열사로 등장하는 순간 현실감엔 금이 간다. 배우가 지닌 신화적 이미지가 너무 커 생긴 반작용이다. 시종일관 진지한 장준환 감독의 시선이 큰 울림을 주기도 하지만, 재기 어린 ‘지구를 지켜라!’를 만든 감독의 변주를 기대했던 이들에겐 ‘직구적 연출’이 아쉬울 수 있다.

양승준 기자

유해진이 연기한 교도관 한병용은 실존인물인 교도관 한재동씨와 전병용씨를 합쳐서 만들어진 캐릭터다.

눈감지 않는, 작은 용기의 릴레이

영화는 1987년에 바치는 ‘헌사’이자, 시대의 아픔을 보듬는 ‘진혼곡’이며, 일그러진 지난 9년에 대한 ‘참회록’이다. 이 영화 덕에 비로소 1987년을 떳떳하게 마주할 자격을 얻었다. 불의와 폭력에 눈감지 않은 작은 용기들이 마치 릴레이 하듯 이어지는 이야기 형식 자체가 곧 영화의 메시지다. 기꺼이 한 조각의 퍼즐이기를 자처한 이들의 의지가 차곡차곡 포개진다. 물방울이 모여 물줄기를 이루고, 작은 외침이 모여 거대한 함성이 되고, 그렇게 역사는 전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감독과 배우들은 스크린에 물길을 내고 광장을 열었다. 그래서 영화 ‘1987’은 혁명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혁명적이다. 두 청년의 비통한 죽음을 가슴에 품고, 87학번 신입생 연희의 발걸음을 따라서 마침내 드넓은 광장에 다다르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렇게 영화는 오늘의 시대정신과 공명하면서 새롭게 다가올 내일을 격려한다. ‘영화의 힘’이 무엇인지, 역사의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지, 본분을 잊지 않은 ‘1987’은 ‘역사 영화’로서도 새로운 장을 열었다. 시대의 한복판으로 우직하게 걸어간 시나리오와 연출, 진심을 다한 연기, 이제 마지막 남은 퍼즐을 채우는 건 관객의 몫이다. 그래야 오롯하게 완성되는 영화다.

김표향 기자

시대의 광기에 굴복하지 않은 기자들은 박종철 사망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다.

‘1987’에서 유일하게 가상의 인물인 87학번 신입생 연희는 관객의 시선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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