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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안전문가 연봉 美의 1/4… 고급 인재들 해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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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안전문가 연봉 美의 1/4… 고급 인재들 해외로

입력
2017.04.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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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만족도 미국 10위ㆍ한국 517위

기업들은 저렴한 프로그램 구매

“3만원대 구글 백신 제품 상륙 땐

국내 업체들 다 죽을 것” 우려도

“화이트해커요? 치킨시장만도 못한 보안시장입니다.”

2017년 국내 보안시장 규모는 3조7,000여억원. 약 80조원 수준의 전세계 보안시장의 4.6% 수준이다. 인터넷 경제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8%로 영국에 이어 세계 2위인 ‘인터넷 강국’ 한국으로서는 심각한 불균형이다. 단순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한 화이트해커의 언급처럼 치킨시장 규모(5조원)보다 보안시장이 작은 현실은 화이트해커 홍민표 에스이웍스 대표가 왜 미국에 본사를 세웠는지, 천재 해커로 불리는 이정훈(25)씨가 왜 삼성SDS에서 구글로 이직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우선 국내에서 보안전문가에 대한 보상이 낮고, 고급 인력이 능력을 발휘할 일자리가 적다. 2013년 보안업체 셈퍼시큐어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에 고용된 보안전문가의 평균 연봉은 1억3,200만원인 반면 한국 보안전문가의 평균 임금은 3,756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대기업만 쳐도 연봉이 7,300만원을 넘기 힘들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은 “한국의 임금 수준이 높지 않아 실력이 뛰어난 해커들은 미국이나 일본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PP)에서 개최된 국내 최대 화이트해커 대회인 '코드게이트2017'에서 한국의 올드고트스킨팀이 대회 종료 10분을 남겨놓고 고심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1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PP)에서 개최된 국내 최대 화이트해커 대회인 '코드게이트2017'에서 한국의 올드고트스킨팀이 대회 종료 10분을 남겨놓고 고심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낮은 임금과 인력 유출은 근본적으로 소프트웨어 후발국으로서 보안프로그램 역시 자체 시장이 작다는 한국의 현실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경우 구글의 안드로이드처럼 전세계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개발해 팔면서 보안시장도 크지만, 한국은 한글 워드 프로세서(HWP)와 같이 국내용 제품으로 한정돼 있고 보안제품도 시장과 수요가 작다. 작은 벤처에서부터 대형 보안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부터 너무 부실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인정한다 해도 기업들의 인식이 너무 떨어져 보안기술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화이트해커는 “보안성이 뛰어난 값비싼 프로그램과, 다소 떨어지는 값싼 프로그램이 있으면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저렴한 프로그램을 구매한다. 보안업체로선 기술보다 가격경쟁력을 우선시해야 경영이 가능해 전반적인 하향평준화를 유도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간혹 창의성 뛰어난 화이트해커가 나오지만 대기업조차 감당 못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선 천재로 통하던 이정훈씨가 삼성SDS에서 삼성 제품에 대한 해킹시험만 하다가, 구글로 옮겨간 후 “전세계 어떤 프로그램이든 취약점을 찾아보라”는 업무를 맡고는 물 만난 고기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다보니 직업만족도의 격차도 크다. 미국 시카고대의 ‘2006 일반사회조사(GSS)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보안전문가의 직업만족도는 10위(65% 만족)로 상위에 꼽혔지만 한국고용정보원의 2012년 발표에서 한국 보안전문가의 만족도는 517위에 그쳤다.

정부는 장기적 전략 없이 해킹사건이 터져 사회적 관심이 주목될 때에만 예산을 올리는 임기응변만 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화 예산의 5.6%를 차지하던 정보보호예산은 2009년 7ㆍ7디도스(DDoS)사태 후 8.2%로 급등했다가 2011년 다시 6.2%로 낮아졌다. 그 해 3ㆍ3디도스사태가 일어나자 2012년 다시 8.1%로 올라갔다가 7.3%(2013년), 5.0%(2014년)으로 떨어졌다. 김혁준 나루씨큐리티 대표는 “한국 정부는 큰 해킹사태가 생기면 그때만 수습하고 끝”이라며 단기적인 정부정책을 비판했다.

화이트해커가 블랙해커로 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해킹에 대한 관심과 기술이 있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없거나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쉽게 범죄의 유혹에 빠져 사회적 혼란을 낳을 수 있다. 곽진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어린 학생들의 경우 유명한 화이트해커를 선망하는 경향이 있어 보안 작동원리를 배우는 데에는 소홀하거나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화이트해커들의 생활을 주기적으로 추적하면서 블랙해커의 길로 접어들지 않는지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화이트해커들 사이에서는 이대로라면 국내 보안업체들은 곧 고사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크다. 한 화이트해커는 “미국에서 인당 3만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새롭게 보안시장에 진출한 구글의 백신 제품이 국내에 들어오면 우리는 다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기술력도 높고 가격경쟁력도 갖춘 구글을 상대할 기업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려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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