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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카탈루냐 코미디

입력
2017.11.02 15: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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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에서 좌파 공화진영이 파시즘 세력에 굴복한 이유는 두 가지다. 내분과 국제전에서의 패배다. 독재자 프랑코 장군의 국민진영은 민족주의와 중앙집권 모토 아래 똘똘 뭉쳤으나 공화진영은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등으로 사분오열됐다. ‘국제여단’이라는 이름으로 가세한 전 세계 양심적 지식인들 역시 권력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에 독일, 이탈리아가 파시즘 확장을 위해 프랑코 장군에 인적ㆍ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반면 영국 프랑스는 공화진영을 지지하면서도 공산주의 확산을 이유로 불간섭 정책을 고수했다. 소련이 지원에 나섰지만 독일 등에 비할 바 아니었다.

▦ 이미 두 차례 독립전쟁에서 패배한 뒤 스페인에 합병된 카탈루냐는 내전으로 결정적 내상을 입었다. 프랑코에 맞선 공화진영의 본거지가 카탈루냐였기 때문이다. 전쟁 패배와 독립 좌절, 진보진영 분열에 따른 분노와 울분은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에도 잘 그려져 있다. 내전의 경험을 토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당시 “민주진영이 한 거라고는 말 바꾸고 방조하고 배신하는 것뿐이었다”고 토로했다.

▦ 최근 파문을 부른 카탈루냐 독립 선포가 용두사미로 끝났다. 독립을 주도한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 정부 수반은 중앙 정부가 독립 선포를 무효화하고 자신을 체포하려 하자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로 도망쳤다. 본인은 망명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벨기에에서 당면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면서 횡설수설하고 있다. 중앙 정부가 자치 정부와 의회를 해산한 뒤 발표한 새 의회 선거에도 참여하겠다니 그렇다면 애초 무슨 생각으로 독립 선포를 강행한 것인지 웃음만 나온다. 이런 자중지란을 겪는 사이 카탈루냐에서 독립 반대 기운이 다시 득세하고 있다.

▦ 이번 사태는 카탈루냐의 분열과 국제전에서의 패배라는 점에서 스페인 내전의 재판(再版)이라 할 만하다. 독립 목소리가 절반이 안 되는데도 찬성파만을 상대로 주민투표를 강행해 역풍을 초래하고, EU는 물론 어느 나라도 독립을 찬성하지 않는 고립무원의 처지를 스스로 드러냈으니 말이다. 주권, 영토, 국민이 있어도 국제적 승인이 없으면 독립 국가의 대접을 받을 수 없는 게 국제현실이다. 독립에 성공한 코소보와 동티모르가 좋은 예다. 냉엄한 국제현실과 우물 안 지도자의 전형을 본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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