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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핑크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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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핑크가 좋아

입력
2016.12.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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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는 본디 남자의 색이었다. 내년에는 남성복에서도 핑크가 더 많이 보일 조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핑크는 본디 남자의 색이었다. 내년에는 남성복에서도 핑크가 더 많이 보일 조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색채만큼 문화의 영향에 좌우되는 것도 없다. 같은 색에 대해서도 문화권마다 표현하는 관점이 다르다. 흰색을 예로 들어보면 북극해에 사는 이누이트 족은 흰색을 묘사하는 단어를 17개나 갖고 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헌에선 흰색은 빛나는 흰색, 치아의 흰색, 백단의 흰색, 가을 달과 구름의 흰색, 별의 흰색으로 나뉜다. 각 국가가 사물에 대해 역사를 통해 굳혀온 가치관을 투영해온 탓이다. 색은 한 국가, 문화, 젠더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이 박힌 ‘생각’을 풀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침묵의 언어다.

2017년 남성복에 불어 닥친 경향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분홍색이 눈에 자주 띈다는 점이다. 옅은 핑크색 수트에 하얀색 장갑, 산호색 핑크의 보일러 수트와 재킷, 연분홍 바지에 이르기까지, 남성복 전반에 풍성하게 드러난다. 유행 예측기관들도 경쟁적으로 핑크를 내세운다. 이러한 움직임은 활황을 맞이한 남성복 시장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패션시장에서 보수적인 남성복 분야는 저성장의 늪을 뚫고 성장 중이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영국에선 남성복 시장이 22% 성장했다. 미국의 국무장관 존 케리도 러시아의 외무장관을 접견할 때 분홍색 타이를 맸다. 올해 그래미상과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에는 남성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청색 대신 분홍색이 상당수 등장했다. 매해 유행색을 발표하는 전문기관인 팬톤도 작년 로즈쿼츠(장미 빛이 감도는 분홍색)를 유행색으로 뽑았는데, 그 예상은 순항 중이다. 미국의 라이프지는 1955년을 분홍의 해로 소개하면서, 남성복에 사용된 분홍색의 역사를 심도 깊게 다루었다. 기사 내용을 보면 미국의 기성복 브랜드 브룩스 브라더스가 1900년 처음으로 분홍 셔츠를 남성의 옷장에 소개했다. 분홍색이 여대생들의 복식에 주요 색상으로 사용된 건 1949년부터다. 이후 남자들에게도 퍼지기 시작한다.

분홍이 남자의 색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복식사에서 패션의 혁명기라 불리는 시대다. 1925년에 발표된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 개츠비가 입은 분홍색 정장은 소설 속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패션 코드이다.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이들조차 분홍을 선호했다. 고전 서부영화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존 웨인도 영화에서 분홍색 셔츠를 자주 입었다. 분홍을 여성의 색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지만, 역사는 정 반대의 이야기만 들려준다. 17세기 바로크 시대, 미래의 지배자가 될 어린 왕자들은 하나같이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긴 칼을 찼다. 18세기 로코코 시대의 초상화를 봐도 분홍은 남성의 색이었다. 밝은 파스텔 톤의 의상은 더러운 노동과 무관한 귀족의 우월감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빨강과 흰색을 섞은 혼합색인 분홍은 다른 옷과 함께 입기가 좋았다.

분홍이 남자의 색이었다는 사실은, 당시 종교적 관행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부유한 귀족들은 한 번 입었던 옷을 교회에 기증하곤 했는데, 교회는 이 옷을 손질하여 제단을 장식하는 천과 제례복으로 사용했다. 원래 교회는 빨강과 녹색, 보라와 검정, 흰색 다섯 가지만을 집전에 사용했으나, 1729년부터 분홍은 제례의 색이 되었고 그때부터 대림절 셋째 주일과 사순절의 셋째 주일에 가톨릭 사제들은 분홍색을 입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가 자의적으로 구성된 사회적 산물이란 점은 색의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가지의 색이 문화적 상징으로 쓰이기까지, 그 내면을 보면 당대의 기술적 한계, 혹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염색 재료들, 당시 유행하는 착장 방식들이 뒤엉켜 만들어낸 한 순간의 의미들이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본값이 되고, 나아가 이런 자의적 기준들이 성별을 나누기도 한 것이다. 사회적 성을 의미하는 젠더가 유연해진 시대, 더 이상 여성적인 컬러니 하는 식의 구분들은 고리타분하다. 그렇다면 왜 난 이 글을 썼을까? 고리타분한 관념의 힘이 시장에선 여전히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색에 딱 달라붙어있는 관념의 틀이 깨지기까지 얼마나 더 걸릴까? 난 핑크가 좋은데. 2017년 봄을 기다려야겠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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