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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한국은 왕실을 복구해야 한다

입력
2015.10.0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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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왕위를 지킨 왕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 왕위를 유지한 여왕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아버지가 죽은 뒤 왕위를 계승했는데, 놀랍게도 25세 때였다.

영국 사회는 젊은 여왕이 왕위에 오르는 것에 굉장히 낙관적이었다. 당시 영국 수상 클레멘트 애틀리는 “엘리자베스 1세만큼 역사에 길이 남을 새로운 엘리자베스 시대의 시작을 기대해봅시다”라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이 방송된다는 것이 알려지자, TV 판매율이 갑자기 두 배로 급증하기도 했다. 대중들은 방송을 통해 공개된 적이 없던 대관식 장면을 보기 위해 TV를 구입할 만큼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2,700만명의 영국인들이 대관식 장면을 시청했고 거리에서는 축제가 열렸다. 이러한 열광은 영국 왕조가 새롭게 번영할 것만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2세의 63년 통치 기간을 되돌아보면 영국 왕조는 계속 쇠퇴했고 왕실의 인기 또한 불안정한 곡선을 그려왔다. 한국이 지난 60년간 극적인 변화를 겪었듯이 영국도 아주 큰 변혁기를 겪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의 국력과 권위, 국제적 영향력이 낮아져가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이 점점 더 큰 자신감과 야망을 가진 국가로 성장하며 영향력 있는 나라로 자리잡아갔던 반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의 국제적 입지가 불안정해져 가는 과정을 목격했던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 변화와 맞물려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한 왕족, 즉 로열 패밀리의 사생활이 전례 없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영국과 전세계 미디어는 왕실에 얽힌 복잡한 애정관계를 집착하듯이 다루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러한 폭발적인 관심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다고 한다. 왕실 가족에 대한 미디어의 추격은 1990년대에 찰스 왕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생활이 파국에 이르렀을 때 가장 심했다. 97년 다이애나비의 죽음 후에는 엘리자베스 2세의 냉담한 자세가 미디어에 노출되어 비판을 사기도 했다. 여왕은 숨고 싶었으나 영국 국민들은 그녀가 다이애나 비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오늘날 여왕은 여전히 영국인들에게 사랑 받는 존재로 남아있으며, 다이애나 비의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 또한 왕실가의 인기를 높이고 있다. 물론 이들에 대한 전세계 미디어의 관심도 여전하다. 또한 왕조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여전히 영향력 있는 국가이다. 적은 인구 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이다. 그리고 여전히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영국이 이러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영국 왕실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인들은 왕실 가족을 사랑하기도, 미워하기도 했지만 로열 패밀리, 그 중에서도 여왕의 이미지는 영국 자체의 이미지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꼿꼿함과 그녀가 전세계로부터 받는 존경으로 영국은 다른 나라가 가질 수 없는 권위와 역사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국가 브랜드 차원에서 볼 때, 나는 한국이 왕실 역사를 이어오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왕실 가족의 비극은 1905년 고종이 억지로 일본과 체결해야 했던 조약에서 시작되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인 순종은 결국 일본에 왕위를 넘겨주고 600년 왕조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잔존한 왕실 가족들의 운명은 보통 비극적이지만 왕실의 후손들은 분명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 왕실을 복구하려는 대중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2006년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4%가 왕실 복원에 찬성했고 이 수치는 2010년 조사에서도 여전히 40.4%를 유지했다. 한국은 현대화를 밀어붙여왔고, 전통은 소비지상주의에 가려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왕조를 복구한다면 전세계에 한국의 깊은 역사적 가치를 알릴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엄청난 국가 마케팅 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배리 웰시 숙명여대 객원교수ㆍ서울북앤컬처클럽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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