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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호 기자

등록 : 2017.09.14 16:25
수정 : 2017.09.14 20:51

근로정신대 할머니 돕기 31년... 명예 광주시민 된 두 일본인

등록 : 2017.09.14 16:25
수정 : 2017.09.14 20:51

미쓰비시 상대 손배소송 지원

日시민모임 다카하시-고이데씨

10년째 매주 ‘금요행동’ 시위

“할머니들 이길 때까지 계속”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 일본에서 수십 년 동안 활동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다카하시 마코토(高橋 信·오른쪽) 공동대표와 고이데 유타카(小出 裕) 사무국장이 14일 오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7세계인권도시포럼에서 광주 명예시민증을 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가해국의 시민으로서 불합리와 부조리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께 웃음을 되찾아 드리는 게 저의 책무입니다.” (다카하시 마코토ㆍ75) “피해자 할머니들이 쌓아 올린 무지개 다리가 한때의 꿈으로 끝나는 다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이데 유타카ㆍ76) 일흔을 훌쩍 넘긴 노인들의 입에선 범상치 않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부릅뜬 눈에선 “반드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이뤄내겠다”는 결기까지 읽혀졌다.

태평양전쟁 당시 군수공장에 강제 동원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돕고 있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와 고이데 유타카 사무국장. 이들은 14일 명예 광주시민이 됐다. 광주시가 “이것이라도 해주고 싶다”며 31년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해 애써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것이다. 명예시민증을 받아 든 이들은 “저희 개인이 아닌 나고야 소송지원 모임에게 주어진 것”이라며 연방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다카하시 대표와 고이데 사무국장이 근로정신대 존재 사실을 처음 접한 건 1986년이었다.

10대의 어린 소녀들이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강제 동원됐다는 얘기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14세의 딸을 둔 다카하시 대표는 “만약 내 딸이 같은 피해를 당한다면 아버지로서 어떨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이들은 1944년 12월 17일 발생한 도난카이(東南海) 지진 때 목숨을 잃은 6명 유가족을 수소문하기 위해 88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 땅을 처음 밟은 후 본격적으로 진상규명에 매달렸다. 그 해 12월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옛 미쓰비시 공장 터에 지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를 세웠고, 98년 11월에는 소송을 뒷받침하기 위한 지원 조직으로 ‘나고야 소송지원회’ 결성을 주도했다.

1999년 3월 1일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해 재판이 진행되는 10년(1999∼2008년) 동안 피해 할머니들의 소송비와 항공료, 체류비 일체를 지원하는 등 피해 할머니를 명예회복과 피해구제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0여 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끝내 패소하고 말았다. 일본 내 사법적 구제의 길이 모두 막혔지만, 이들의 활동은 그치지 않았다. 2007년 7월부터 현재까지 매주 금요일 나고야에서 미쓰비시 본사가 있는 도쿄까지(왕복 720㎞) 이동해 미쓰비시의 진심 어린 사죄와 자발적 배상 촉구하는 시위를 ‘금요행동’을 387회째 진행했다. 이들의 헌신으로 시작한 소송은 1ㆍ2ㆍ3차로 나눠 한국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다.

다카하시 대표는 “일본 정부와 법원, 미쓰비시 중공업은 7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며 “명예회복을 바라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승리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고이데 사무국장도 “슬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진실을 새기는 활동이 일본 사회에서 좀 더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겠다”고 전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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