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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담배천국, 구한말 흡연율 최대 50%에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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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담배천국, 구한말 흡연율 최대 50%에 육박

입력
2015.04.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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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지음 문학동네·480쪽·3만원
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지음 문학동네·480쪽·3만원

조선시대 정조의 시문집 ‘홍재전서’의 한 구절. 지극한 애연가였던 정조는 담배 우호 정책을 펴며 1797년 총신 윤행임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초(南草?담배)는 사람들에게 유익하오. (…) 밥을 먹을 때에는 그 도움을 받아 음식이 소화되고 변을 볼 때는 악취를 물리치오. 잠이 오지 않을 때 담배를 피우면 잠이 온다오.”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 담배를 재배해 신하들에게 하사했고, 1796년 ‘남령초 책문’(담배 시험)을 통해 만백성이 담배 피울 날을 꿈꾸며 신하들에게 그 대책을 제시해보라고 했다. 남령초는 담배를, 책문은 국왕이 신하에게 내는 시험을 가리킨다. 220년 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엔 그런 게 가능했다.

‘담바고 문화사’는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담배를 통해 조선의 역사와 사회·문화적 의미를 논한 책이다. 안 교수는 정조 연간에 주로 활약한 문필가 이옥(1760~1815)이 쓴 담배예찬론 ‘연경(煙經)’을 2003년 발굴한 데 이어 2008년에는 그 역주본을 냈고, 이를 계기로 담배에 관한 기록을 추가로 모아 정리했다.

조선 후기 담배는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사회를 움직이는 축으로 작용했다. 유혹의 수단으로 쓰여 기생은 장죽을 물었다(신윤복 '연소답청').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 후기 담배는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사회를 움직이는 축으로 작용했다. 유혹의 수단으로 쓰여 기생은 장죽을 물었다(신윤복 '연소답청'). 간송미술관 소장
다양한 연령대 남자들도 모두 입에 곰방대를 물었다(김홍도 '장터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양한 연령대 남자들도 모두 입에 곰방대를 물었다(김홍도 '장터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담배의 옛이름 ‘담바고’는 포르투갈어 ‘타바코’(tobaco)에서 왔다. 담배가 조선으로 건너온 것은 17세기 초로 추정된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담배는 술이 차지하던 기호품의 제왕자리를 건네 받는다. 이덕리(1708~?)가 ‘기연다’에서 분석해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 흡연율은 최소 25%, 구한말 지석영이 발표한 ‘단연의 이’에서는 최대 50%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문인 윤기(1535~1607)은 이 풍경을 이렇게 적었다.

‘사해(四海) 안에서 어느 누구고/ 담배에 침을 흘리지 않는 이 없네/ 위로는 고귀한 공경으로부터/ 아래로는 마부에 이르기까지/ 마침내 똑같은 기호를 누리고/ 단짝을 이루어 어울리네.’

담배는 유혹의 수단이기도 했다. 여인이 님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멋을 ‘염격(艶格)’이라 불렀고, 특히 기생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유혹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담뱃불을 빌린다는 핑계로 불륜이 시작되기도 했다.

담배는 기호식품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경제를 움직이는 한 축이기도 했다. 담배에 중독된 청나라 귀족들은 조선산 지사미(품질 좋은 잘게 썬 담배)를 최고로 쳤고, 그만큼 이득이 보장돼 곤궁한 선비들도 담배농사에 매달렸다. 조선시대 애연가 계보 한자리를 차지했던 정약용과 그 아들들 역시 담배농사를 직접 지었다. 구한말 정부에서 연초세를 징수하기 전까지 담배의 생산과 유통에서 공식적으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고, 서유구는 담배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것을 재정고갈의 원인으로 꼽았다.

찬란했던(?) 조선의 담배 문화는 일제의 강제 합병으로 빛을 잃는다. 장죽의 소멸이 대표적이다. 일제는 장죽으로 담배 피우는 문화를 미개한 것으로 규정하고 지연권(종이에 만 담배)을 들여왔다. 일제강점기 위정척사파의 금연운동이 국채보상운동의 일환으로 확산되고 외국산 담배가 국내시장을 장악해가면서 금연운동은 더 활기를 띠게 된다.

480쪽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으로 저자가 수 년에 걸쳐 모은 풍부한 문헌 기록과 민화 사진들을 곁들여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흡연의 풍경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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