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1000쪽 넘는 벽돌책 꾸준히 내는 이유

알림

1000쪽 넘는 벽돌책 꾸준히 내는 이유

입력
2016.02.18 11:00
0 0

한동안 누워 잘 때 베개로 쓸만한 두께의 ‘벽돌책’이 화제였다. 그런데, 기준을 조금 더 높여(벽돌책이 600~700쪽 정도라면) 아예 1,000쪽이 넘는 책들도 요즘 적잖게 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베고 자려 해도 목이 부러질 책’들이다. 단군 이래 최대 출판불황이라는데 도대체 이런 책은 왜 낼까.

최근 교보문고에 의뢰해 1,000쪽 이상 되는 책 리스트를 뽑았다. 사전, 전집류는 다 빼고 단행본을 기준으로 삼았다. 디지털 때문에 아날로그가 죽어가는 시대라는 아우성이 가득하건만, 의외로 1,000쪽이 넘어가는 책의 융성은 ‘21세기적 현상’이다. 1990년대에는 1,000쪽 이상의 책이 한 해 10권이 채 안됐지만, 2003년 26권으로 20권대를 처음 돌파하더니 2007년에는 61권에 달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출판계가 불황을 겪고 있다는 말은 오래 됐지만, 실질적으로 출판 시장 전체의 성장세는 2010년 전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면서 “그런 추세가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2007년을 정점으로 1,000쪽 이상 책의 발행 수는 다시 줄기 시작했다지만, 그래도 한해 40권 안팎으로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출판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전에만 해도 책이 좀 두꺼워질 만하면 책을 상ㆍ중ㆍ하, 1ㆍ2ㆍ3 하는 식으로 분권해서 내는 게 일종의 유행이었는데 이런 경향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런 책이 늘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일단 고전 완역본 비중이 크다. 동서문화사의 ‘성호사설’, 인간사랑의 ‘관자’, 현대지성의 ‘그림형제 동화전집’, 위즈덤하우스의 ‘완역 사기열전 2’ 같은 책들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 뿐 아니라 일반 고급 독자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평이 좋으면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굳히기도 한다. 이시윤 민음사 대리는 “800쪽이 넘는 호메로스 ‘일리아드’는 5만권 넘게,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 전 6권은 4,000쪽이 넘는 분량인데 10만권 넘게 팔렸다”고 말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살림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화려한 베스트셀러 못지 않게 매년 꾸준히 나가는 이런 책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독자들 스스로가 찢어진 낱권보다 한 권짜리 책을 오히려 선호하기도 한다. 현대지성의 박지성 팀장은 “분권 형태로 책이 여러 권으로 나눠지면 관리가 어려우니 차라리 두껍더라도 한 권으로 내주길 바라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해와 공감의 해석학 2’를 내놓은 청계출판사 이요성 대표도 “전문적 독자들의 경우 어차피 앞 뒤를 오가면 전반적으로 책을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책이 나눠지는 걸 싫어한다”고 말했다. 1986년 처음 나와 이 분야 최고 연구서로 꼽히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30년만에 개정판이 나오면서 한 권짜리로 합본되어 나왔다. 김수한 돌베개 주간은 “출간 6개월 만에 1,500부가 나가는 등 연구자들 중심으로 반응이 여전히 좋다”고 말했다.

두꺼운 책이 판매에서 안정적인 면도 있다. 출판계에서 ‘벽돌책 제조창’으로 유명한 글항아리는 ‘저먼 지니어스’와 ‘량치챠오 평전’ 2권을 리스트에 올렸다. 이은혜 편집장은 “두껍다 해도 적게는 2,500부에서 많게는 5,000부까지 팔릴 뿐 아니라 오히려 얇은 책에 비해 판매가 굉장히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벽돌불패’까지는 아니더라도 ‘벽돌불손’(벽돌책은 최소한 손해보지 않는다) 정도는 된다는 설명이다. 올해도 ‘제2차세계대전’, ‘중국선비의 역사’,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틈새시장을 뚫는 경우도 있다. 푸른행복이 내놓은 ‘숲을 말한다 나무 이야기’는 야생화와 나무에 집중한 책이다. 이런 책은 불티나게 팔리지는 않지만 숲 해설사 등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찾을 수 밖에 없는 책이다.

하지만 두꺼운 책을 내는 고충은 만만치 않다. 이런 책은 대개 어느 정도 수준이 있기 때문에 알맞은 저자 혹은 번역자를 찾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교열 교정을 보는 작업도 지난하다. 지난해 ‘불평등의 창조’를 내놓은 이지열 미지북스 대표는 “1,000쪽짜리 책이었으나 300쪽짜리 책 4, 5권내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것 같다”면서 “책이 마음이 들고 출판사와 콘셉트가 맞아 출간을 결정했기에 후회는 없지만 솔직히 꼭 필요한 책이 아니라면 되도록이면 안내고 싶다”며 웃었다. 의외의 장벽도 있다. ‘주자평전’(상ㆍ하)을 펴낸 역비는 1,000질만 나가도 다행이라던 책이 1,400질 넘게 나간데다, 전문가ㆍ일반인ㆍ언론 등에서 고루 호평 받은 덕에 싱글벙글이었다. 그러나 9만8,000원이란 비싼 가격 때문에 책을 사줘야 할 도서관 등 공공기관들이 망설이고 있어 애를 태우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두터운 책을 외면 못하는 이유는 “허영심이라고 비웃어도 어쩌지 못할 만족감” 때문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그 분야의 완결판을 내놓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계속 두꺼운 책을 만들어내게 하는 원동력 같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김다은 인턴기자(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 4)

소담 인턴기자(서강대 프랑스문화 4)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