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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백제왕성과 서울

입력
2017.12.06 12:5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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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백제왕성 풍납토성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서울시가 풍납토성의 본격적인 발굴조사 2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한 것인데, 풍납토성의 조사ㆍ연구 성과, 보존ㆍ활용 방안 등을 주로 논의했다. 오랜 동안 이 문제를 다뤄온 국내의 학자ㆍ시민ㆍ관료뿐만 아니라, 일본ㆍ중국ㆍ베트남의 전문가도 참가하여 다양한 견해를 개진했다. 회의에 앞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발굴현장을 견학함으로써 2000년 전 백제왕성의 밑그림을 엿볼 수 있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에, ‘북으로 한수를 띠고 있고, 동으로 높은 산에 의지하고 있으며, 남으로 비옥한 들판이 보이고, 서로 큰 바다가 막혀 있으니’, ‘하남 위례성에 도읍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기원전 18년이다. 이에 맞는 지역은 송파구를 중심으로 한 강동구 일대이다. ‘하남 위례성’은 한성(漢城)으로 발전하는데, 풍납토성이라는 설이 대세다. 그 남쪽 약 700m 거리에 몽촌토성이 축조되자 북성인 풍납토성은 법궁(法宮), 남성인 몽촌토성은 행궁(行宮)의 역할을 했다. 둘을 아울러 한성이라고도 불렀다. 한성 주위에는 수도방위기지로서 아차산성(阿旦城)과 삼성동 토성, 왕족의 무덤으로서 방이동 고분군과 석촌동 고분군이 조성되었다.

한국사에서는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패하고 도읍을 공주로 옮긴 때(기원후 475년)까지를 한성백제(백제 한성시기)라고 부른다. 백제는 그 후 부여로 다시 천도하여 중흥을 꾀하다 663년 나당 연합군에 패하여 멸망한다. 이렇게 보면 700년 백제사 중에서 3분의 2 이상이 한성백제인 셈이다. 게다가 조선시대를 포함하면 서울의 수도역사는 1,100년 이상으로 확장되고, 그 시원도 2,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백제사를 복원하고 서울사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한성백제의 실체규명이 절실하다.

한성백제의 비밀을 간직한 풍납토성 조사ㆍ발굴은 한국 고고학의 기념비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주거지, 가마터, 관청지, 우물, 도로, 성문지, 토기 등을 많이 찾았다. 토성의 밑폭이 40~60m, 높이가 15m나 된다는 규모도 밝혀냈다. 지하에 묻힌 한성백제의 모습이 조금 드러난 셈이다. 그렇지만 1963년 첫 조사 이래 성 내부를 빼고 토성 3.5㎞ 정도만 사적으로 지정하여 난개발을 막지 못했다. 당시 성 안에는 밭만 있고 집은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1만 8,000여 세대 약 4만 8,000명이 거주하는 도회지로 변모했다. 그리하여 유적의 발굴·보전과 주민생활을 둘러싼 갈등과 소송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풍납토성의 현안을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유적과 주민의 공생을 모색하는 공공고고학이 화제로 올랐다. 골자는 주민이 유적의 발굴, 보존, 정비, 활용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유적의 가치를 알고 친하며, 긍지로 느끼고 지키며, 활용하고 즐긴다. 곧 유적과 주민을 분리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연계를 강화한다. 관계 당국이나 학자 등은 그런 환경이 되도록 돕는다. 이른바 ‘지속 가능한 개발전략’을 구사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도 몇 가지 제시되었다. 첫째, 지역과 유적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이름을 붙이자. 풍납토성이 백제왕(궁)성임을 바로 인지할 수 있도록 ‘백제왕(궁)성동’으로 개명한다. 근처의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이름도 ‘한성백제역’, ‘백제북성역’, ‘백제남성역’, ‘방이(석촌)백제고분역’ 등으로 바꾼다. 이름은 지역의 성격을 규정한다. 둘째, 토성 절개지, 대문지, 우물 등에 현장박물관을 건립하자. 현장에서 유적을 관람함으로써 백제 한성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정비된 웅장한 도시이자 궁성임을 알 수 있다. 셋째, 현재의 발굴ㆍ보존 성과만이라도 잘 정리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자. 공주·부여·익산의 백제유적이 이미 등재된 상황이므로 그것을 확장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공공고고학의 취지는 풍납토성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재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몇 년 전부터 이미 그런 방법을 시행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번 ‘백제왕성 국제학술회의’를 계기로 서울시가 시민과 문화재가 서로 도움이 되는 ‘2,000년 역사도시’로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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