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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승화] 원칙(原則)

입력
2016.10.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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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생각이 내게 들어오면서, 나는 ‘우연히’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명한 사실은 나는 여러 가지 주어진 환경의 결과물이란 점이다. 내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 다른 나라가 아니라 한국에 태어났다. 나는 우연히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 초반을 살고 있다. 내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후원한 부모를 운 좋게 만나 지금은 글을 써서 주위 사람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나누는 일을 한다. 이것인 나의 동의 없이 내 인생에 던져진 운명이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 나는 10년 후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현재의 ‘나’는 순식간에 과거의 ‘나’가 될 것이며 현재의 ‘나’를 미래의 ‘나’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나는 구태의연한 나, 과거에 기생하는 나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14세기 이탈리아에 살았던 혁신적인 인간이 있었다. 시인 단테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탈바꿈하기 위해 ‘신곡’이라는 위대한 서사시를 썼다. 그 결과 르네상스와 근대세계가 열리는 단초를 제공했다. ‘신곡’의 첫 부분은 ‘인페르노(지옥 편)’다. 단테는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을 여행한다.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아스’라는 서사시를 지은 기원전 1세기 로마시인으로 지옥에 내려가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어두운 숲을 지나 무시무시한 지옥문에 도착한다. 지옥문에 “여기 들어오는 자들이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지옥은 희망이 없는 장소다.

지옥에 들어가기 위해 죽음을 강을 건너야 한다. 그들은 죽음의 강을 건너기 이전에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들은 지옥조차도 거부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신에게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고 신에게 충성하지도 않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누구에게 반기를 든 적도 없고 누구를 찬양한 적도 없는 “미지근한 존재들”이다. 가장 비참한 인간은 어떤 일을 시도하다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 한마디로 겁쟁이다.

미래의 ‘나’를 위해 나는 무엇을 시도해야 할까. 내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내 손에 쥐고 있는 정과 망치로 나하고 무관한 쓸데없는 것들을 과감히 쪼아버리는 일이다. 그리고 나면, 나를 감동시켜 움직이게 하는 어떤 신비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 ‘내 인생’이라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설계도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내면의 소리다. 과거의 나를 버리고 미래의 신나는 나를 열망하고 묵상을 습관화하면, 이 마음에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만든 인생은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다. 남의 눈치만 보고 현실과 타협하기에 급급하고 상대방과 경쟁해 1등이 되려는 불안한 마음은 불행의 시작이다. ‘나’라는 인생은 나를 위해, 내 손으로 만든 조각일 때 가치가 있다. 내가 그 마음의 소리를 온전히 따라가면, 환희와 힘과 평온으로 가득한 ‘천상의 집’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 집을 건축하기 위한 몇 가지 단순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들이 있다. 그런 원칙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는 삶은 어떤 역경이나 유혹의 폭풍도 단호하게 견딜 수 있다. 삶의 원칙은 눈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운행을 설명하는 아인슈타인의 ‘E=mc^2’처럼 단순한 수학이다. ‘원칙’(原則)이란 한자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원’(原)자는 ‘굴 바위나 언덕에서 비탈진 아래’를 의미하는 기슭 ‘엄’(厂)과 ‘물의 근원’을 나타내는 ‘천’(泉)가 합쳐져 만들어 졌다. 물의 수원은 기슭 아래 숨겨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끊임없이 흘러나와 시냇물이 된다. ‘칙’則이란 자신의재산 즉 패(貝)를 칼로 공평하게 나누는 행위다. ‘원칙’이란 마음속에 숨겨진 자신의 고유임무를 깨닫고, 그것을 자신의 삶 안에서 조화롭게 배치하는 능력이다. 원칙은 위대한 건물이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는 삶의 수학 공식이다.

기원전 27세기에 살았던 이집트의 수상이자 수학자였던 임호텝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천상의 건물 피라미드를 지었다. 그는 높이 147m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20년에 걸쳐 완성한다. 2.5톤이나 나가는 직사각형 바위를 230만개 쌓아 올리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230만개나 되는 바위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잡고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 완벽한 피라미드가 되기 위한 원칙이 있다. 이것을 이집트어로 ‘마아트’라고 부른다. 마이트(maat)는 성각문자로 타조 깃털로 표시한다. 이집트가 기원전 3000년 등장하기도 전에, 건물을 지을 때 오래된 아프리카 의식이 있었다. 건물의 중심에 타조 깃털을 놓는 행위다. 타조 깃털은 ‘마땅한 것’을 적재적소에 표시하는 물건이었다. ‘마아트’는 우주의 수천억개의 별들의 운행방식이며 자연의 순환이다. 또한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찾아야 할 인생의 원칙이다.

‘원칙’이란 뜻을 지닌 ‘프린시플’(principle)에도 비밀스러운 의미가 숨어있다. 이 단어는 “삶에 있어서 최고의 우선순위; 탁월함; 숭고함”을 의미하는 라틴어 primus와 어떤 대상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쟁취하는 행위” 동사인 라틴어 capere의 합성어다. ‘원칙’이란 자신의 삶에서 다양한 우선순위를 숙고하여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원칙은 자신의 삶을 숭고하고 탁월하게 만드는 인생의 수학 공식이다. 당신의 삶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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