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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1세 할머니 신세타령에 야만의 시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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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1세 할머니 신세타령에 야만의 시대가...

입력
2016.02.2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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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송신도씨. 열여섯 살 때 대전에서 중국 우창으로 끌려가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의 위안부로 있었다. 바다출판사 제공
1998년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송신도씨. 열여섯 살 때 대전에서 중국 우창으로 끌려가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의 위안부로 있었다. 바다출판사 제공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

가와타 후미코 지음ㆍ안해룡, 김해경 옮김

바다출판사ㆍ344쪽ㆍ1만5,000원

1991년 12월 6일 김학순씨를 포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이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도쿄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1993년 재판이 시작되고 6년만인 1999년, 도쿄지방재판소는 피해자들의 소송을 기각한다. 피해 할머니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렸지만 이듬해 고등법원에서 다시 패소했을 때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마지막 재판보고집회에서 피해 여성 중 한 명인 송신도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래 한 곡 할래.” 마이크를 잡은 그는 즉석에서 노랫말을 지어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춤추고 노래했다. “나는야 에헤~ 진 재판 괜찮아 좋아 그렇지만/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으니/ 여기 모인 분들 잘 들어요 두 번 다시 전쟁은 하지 말아주세요/ 도시코(송씨의 일본 이름)는 지금도, 100년 살아도, 내일 죽어도/ 할 때는 한다. 돈이 없어도, 입을 것이 없어도, 장식품이 없어도/ 해내겠어. 이 정치가 거지들. 아, 힘내고, 아, 힘내고, 힘내”

일본 언론인 가와타 후미코는 ‘신세 타령’의 한국적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재일 할머니들이 쓰는 말 중에 ‘고생 자랑’ ‘가난 자랑’과 함께 가장 자주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는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거치며 고향에서 뿌리 뽑혀 일본으로 간 재일 1세 할머니 29인의 삶을 가타와가 직접 보고 기록한 르포르타주다.

제주 출신 김숙량씨는 다섯 살에 오사카로 이주해 여덟 살 때부터 메리야스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바다출판사 제공
제주 출신 김숙량씨는 다섯 살에 오사카로 이주해 여덟 살 때부터 메리야스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바다출판사 제공

처음 가와타의 관심은 재일 할머니가 아닌 나이 든 모든 여성이었다. 대부분이 문맹인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야생의 언어에 이끌려 일본 구석구석을 순회하던 그는 오키나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최초로 증언한 배봉기씨를 만나고 취재 방향을 틀었다.

“일본 할머니들이 소작지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흙이나 자연과 싸우면서 살아온 데 반해, 재일 할머니들은 고향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정착할 곳조차 없었다. 대부분은 동포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기 시작한 도시에서 살았다. 임금이 지급된다 해도 극히 낮은 임금조건에서 어린 나이부터 노동을 시작했기에, 재일 할머니들은 전쟁 전부터 여성 노동자의 선구자였다.”

할머니들의 삶은 도쿄 공습, 히로시마 피폭, 일본군 위안부, 한센병,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지난 세기의 야만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히로시마에서 피폭 당한 하해수씨는 피폭 직후 잇달아 죽은 가족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뒤집어가며 태웠다. 배급 받은 연료의 양이 적어 효율적으로 태우지 않으면 뼈를 추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폭력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가정의 폭력을 견디는 것도 이들의 숙명이었다. 경남 출신의 김분란씨는 일본에서 오빠의 도박빚에 팔리다시피 열네 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혼자서 낳았다. “(탯줄은)실타래에 까만 실이 있었어. 그걸 양쪽으로 묶고, 가운데를 잘랐지. 그런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래도 잘 견뎠지, 뭐. 쉽게 죽지 않는 게 인간이야.” 도박장에서 돌아온 남편의 첫 마디는 “뭐야, 또 여자애야”였다. 분란씨의 반지를 가지고 나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저자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식은 땀이 흐른다”고 말한다.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만큼 극한의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남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웃음과 춤, 노래다. 가와타는 송신도 할머니를 “집회 참석자들을 웃기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가 부르는 혼신의 신세타령엔 문법도 논리도 없지만, 권력이 써 내려간 정연한 문자보다 더 강력하게 전쟁과 식민지 시대의 참상을 고발한다. 그렇게 “간과할 수 없는 역사, 알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를 일깨운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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