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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중] 뿔난 유권자들, 맞춤형 ‘팝업 정당’ 키운다

입력
2017.03.0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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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재정 등에 실망한 좌파표심

50플러스, 민주66 등으로 이동

14개 정당이 원내 진입 예상

집권연정 시나리오도 복잡할 듯

상위 3개당 의석 합해도 42%

극우 자유당은 의석 두배 예상

지난달 20일 네덜란드 헤이그 도심 거리에 설치된 광고판에 오는 3월 15일 열리는 총선 출마 정당들의 캠페인 포스터가 띄워져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네덜란드 헤이그 도심 거리에 설치된 광고판에 오는 3월 15일 열리는 총선 출마 정당들의 캠페인 포스터가 띄워져 있다. EPA 연합뉴스

“미국처럼 되지 않겠습니까.”

네덜란드 제2도시 로테르담의 중산층 노동자인 헹크 부스는 오는 15일 치러지는 총선에 관해 묻자 이와 같이 답했다. 부스는 로테르담 외곽의 유리병 공장에서 46년간 일해 왔다. 미국계 기업인 오언스 일리노이가 소유한 공장은 수익률 저하로 곧 폐쇄된다. 미국이 저성장 국면에서 세계화에 대한 회의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선택한 것처럼 네덜란드 의회 지형도 곧 뒤바뀔 것이라는 게 부스의 예측이다. 그는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내 선택은 반체제”라고 주장하며 일자리 보호, 연금수령연령 하향 조정 등을 공약한 극우 자유당(PVV)과 50플러스 사이에서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부스의 예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네덜란드 유권자들은 반유럽연합(EU), 반이민 등 세계화에 기반한 현 체제를 뒤엎을 대안을 찾고 있지만 이들의 표심을 얻은 것은 미 공화당과 같은 거대 정당이 아닌 군소정당들이다. 올해 네덜란드 총선 투표지에 기재될 정당 수만 28개. 신생 군소정당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운데 이들은 기성 정치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유권자들을 맞춤형 공약들로 사로잡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4개 정당이 원내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네덜란드 총선은 ‘군소 정당의 잔치’로 거듭 나고 있다.

‘팝업 정당’이 대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네덜란드 총선의 특징을 ‘원자화’ ‘파편화’라고 규정하며 “유권자들의 기성 정당들에 대한 피로감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네덜란드 의회는 총 150석으로 득표율 0.67%만 넘으면 1석부터 배정하는 비례대표제로 운영된다. 때문에 실질적 양당제에 승자독식 성격인 미국과는 현저히 다른 의회 지형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 지지율 추이 상 선거 결과 10석 이상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당이 일곱 곳, 나머지 의석을 나눠 가질 군소정당이 또 일곱 곳에 달한다. 극우주의자로 유명한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자유당(PVV)은 올해 2012년 선거(15석)보다 2배에 이르는 28~31석을 얻을 전망인 반면, 집권 연정인 자유민주당(VVD)과 노동당은 기존 의석의 절반에도 못 미칠 예정이다. 거대 3당의 존재감 자체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에 따르면 예상 의석 수 상위 3개 정당의 비중은 전체 42%로 20년 전인 1986년(89%) 대비 절반 이하로 축소되는 모양새다.

군소정당들은 뚜렷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좌파인 노동당, 사회당의 표는 같은 진영의 군소정당인 녹색좌파당, 민주66(D66), 50플러스로 급속히 분산되고 있다. 친EU 정책과 교육 개혁 공약으로 진성 좌파를 끌어 모으는 D66 외에 다른 군소 인기 정당들은 대부분 맞춤형 정책으로 소집단을 공략하는 이른바 ‘팝업 정당’이다. ▦노인 권리를 대변하는 50플러스 ▦동물권 수호 정당인 동물당 ▦EU-우크라이나 무역협정 존속 국민투표 과정에서 출범한 반EU 성향의 ‘민주주의를 위한 포럼(이하 민주포럼)‘ ▦무슬림 권리 보호를 주장하는 ‘생각하라’ 등이 대표적이다.

대안에 목마른 유권자들

네덜란드 유권자들이 팝업 정당에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그들 대다수가 표방하는 반체제 공약 때문이다. 기성 정당을 대표하는 연립정부가 재정위기 대응 과정에서 긴축 정책을 펼치며 유권자들을 실망시키자, 시민 나름대로 ‘숨구멍’을 찾기 시작한 것. 연정은 최근 4년간 긴축재정과 무역 자유화를 단행하면서 의료 혜택과 노인 복지 등을 줄여왔다. 정부정책자문위원회(WRR)에 따르면 실제 네덜란드 사회의 빈부 격차는 2007년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경제적 불안감에서 생겨난 ‘대안 찾기’ 움직임은 포퓰리즘 지지로 이어진다. 현 사태의 근원이 이민자라 생각하면 자유당이나 민주포럼으로, 단순 제도 탓이라고 여기면 50플러스 등으로 옮겨간다. 로테르담에 살고 있는 영국계 연구자 겸 작가인 벤 코츠는 지난달 20일 더치뉴스에 “항구에서 일하는 수많은 내 친구들은 이민자들과 심지어 로봇에게까지 일자리를 빼앗길까 걱정하며 보호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들을 지지한다”며 “경제적 불안감이 가중되면 누군가는 이러한 두려움을 이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민주당 지지자였다 최근 민주포럼 당적에 등록했다는 시민 로네크 바우만스는 “반EU 공약은 넌센스나 단순한 절규가 아니라 잘 설계된 구상“이라고 말했다.

복잡해진 연정 셈법

정당 수 폭증 자체가 문제는 아니나 원내 정당 난립은 분명 네덜란드의 정치 비용을 늘리는 사안이다. 원내 진입이 유력한 모든 정당이 극우 자유당의 빌더르스 후보와 연대를 거부하고 있어 자유당을 배제한 나머지 정당으로만 연정을 꾸려야 하는데, 과반 76석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FT에 따르면 자유당을 제외한 5개 정당으로 연정을 구성할 경우 시나리오는 2가지. 6개 정당으로 수를 늘리면 무려 13가지 구성이 가능하다.

자유당의 승리는 네덜란드보다 오히려 다른 유럽 국가에 더 큰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프라우케 페트리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해 온 빌더르스 후보가 총선 1위를 차지할 경우 상징성으로 인해 두 국가의 극우 세력도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는 오는 4월 23일, 독일 총선은 9월로 예정돼 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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