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등록 : 2017.12.23 04:40
수정 : 2017.12.24 15:22

[기민석의 성경 ‘속’ 이야기] 힘 믿고 지혜 버린 솔로몬의 과오, 트럼프는 알고 있을까

<10> 성서 역사로 본 예루살렘

등록 : 2017.12.23 04:40
수정 : 2017.12.24 15:22

스위스 바젤의 타운 홀 안에 16세기에 그려진, 새끼손가락을 내보이는 르호보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르호보암이 나오는 성경의 ‘열왕기’를 읽어 봤을까.

예루살렘은 점령할 수 없었다. 가나안, 즉 지금의 팔레스타인ㆍ이스라엘 지역을 침공한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도시들을 무너뜨리고 승승장구했지만 예루살렘은 어림없었다.

그때가 기원전 15~14세기 즈음이다. 4세기가 지난 기원전 10세기, 위세를 한창 떨치던 다윗 왕이 침공했을 때에도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너는 여기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사람이나 다리 저는 사람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며 다윗에게 호기를 부릴 정도였다.(사무엘하 5:6) 이후, 또 4세기가 지난 기원전 6세기, 막강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략도 2년간이나 방어했던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이다.

철옹성 예루살렘을 무너뜨린 다윗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처음 침공했던 기록을 담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를 보면, 유독 예루살렘 점령에 관해서는 증언이 혼잡하다. 어떤 기록은 마치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탈환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또 다른 기록들은 정복하지 못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자손과 함께 살고 있다.”(사사기 1:21) 남겨진 증언이 복잡하다는 것은 그만큼 어느 누구도 쉽게 이 도시를 함락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난공불락의 철옹성, 삼면이 계곡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처음 공략을 예루살렘이 이겨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약 4세기 동안 이 도시는 이스라엘이 아닌 ‘여부스(Jebus)’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대단한 저항력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와서도 오랫동안 건들지 못했던 ‘이방’사람들의 도시였기에,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나 주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두고 말한다. 너의 고향, 네가 태어난 땅은 가나안이고,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고,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다.”(에스겔 16:3)

하지만 기원전 10세기, 다윗 왕의 침공에는 버티지 못했다. 다윗을 그야말로 ‘스타’로 만들어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비로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무너뜨리고 당시 팔레스타인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다윗 성’이라 자랑스럽게 명명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역사에 처음으로 왕국다운 나라를 이루어 나갈 수 있었으니, 다윗의 예루살렘 점령은 다가올 모든 영광의 기폭제가 되었다.

남, 북 사이 중립지 예루살렘

대체 예루살렘의 무엇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 그런 안정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었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예루살렘은 ‘중립지’였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왕이 되었지만 자기를 지지하는 남부 세력과 선왕인 사울 집안을 지지하던 북부 세력 간의 어깨 싸움에 힘들어했다.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도 중립지였다. 남과 북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아 정치적 통치와 알력 중재에 유리하였다. 오랜 기간 이스라엘이 아닌 가나안 사람들의 요새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신앙 전통이나 정치 체제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신앙 전통을 상징하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들여놓고 종교적 정통성을 확보하였다. 하지만 민족적 신앙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도시의 왕처럼 자신이 제사장의 역할마저 하였다.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파격이었다. 자신의 선왕이었던 사울은 제사장 흉내 좀 내보려다가 사무엘이라는 지도자에게 어지간히 혼났었는데, 다행이 사무엘은 이제 죽고 없었다. 종교적으로 민족적 편협성을 뛰어넘은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중립을 꾀하려 했던 흔적이 엿보이는데, 자기가 살던 왕궁 옆에는 남쪽 자기 고향 사람도 아니고 북쪽 사람도 아닌 히타이트 사람 ‘우리아’를 가장 가까이 두고 살았던 것이다. 많이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이렇게 예루살렘은 중립과 완충의 역할을 하며 나라의 번영을 이끌어나갔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의 이야기다.

지난 5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역사를 되돌리는 트럼프

기원후 20세기 중반, 예루살렘도 나라도 잃고 전 세계에 떠돌아 살던 유대인들이 다시 팔레스타인을 침공했다. 서구 강국들의 지지를 힘입어 다시금 팔레스타인의 토착민을 밀어내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워버렸다. 성서 시대에 이스라엘 왕국이 같은 땅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과 혈전을 하며 살더니, 지금도 이스라엘은 같은 땅에 있는 팔레스타인과 한 우리 안에 갇힌 맹수처럼 피 튀기며 싸우고 있다. 참고로, 팔레스타인(Palestine)이란 명칭은 성경의 ‘블레셋(Philistine)’에서 따온 이름이다. 3,000년 전 성경의 역사가 현대에 다시 재현되는 듯하다.

처음 가나안 침공 때처럼, 지금의 이스라엘도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다. 행정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관리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자신들의 수도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다른 국가들도 예루살렘의 특수한 긴장과 균형을 섣불리 깨뜨리려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그 땅이 정치적인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종교적으로도 중립을 꾀하는데, 옛 예루살렘 지역을 4등분 하여 아르마니아, 유대교, 기독교, 무슬림이 공존하도록 하였다. 비록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점령하였지만, 그 땅이 지닌 복잡 다양한 역사를 존중하기에 아슬아슬하지만 그럭저럭들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돌을 던지고 말았다. 2017년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했으며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을 지시했다. 참고로, 트럼프는 공공연히 자신이 ‘힘’을 앞세우는 정치가임을 천명해온 자이다. 이스라엘은 ‘힘’의 미국을 힘입으려 하는 것이다.

다윗의 예루살렘이 뒤이어 솔로몬의 예루살렘이 되면서 그 긴장의 외줄은 점점 더 팽팽해져 갔다. 솔로몬이 처음에는 지혜로운 자로 유명했지만, 나중에는 ‘힘’을 과시하는 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고기반찬 구경하기 힘들었지만, 솔로몬의 왕궁에는 어마어마한 고기를 백성들이 잡아 바쳐야만 했다. 하루에 바친 고기의 양이 “살진 소 열 마리와 목장 소 스무 마리와 양 백 마리이고, 그 밖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 들이었다.”(열왕기상 4:21-23) 수많은 이방 공주들과 결혼하여 정치 외교적 힘도 굳건히 세웠다. 무엇보다도 그의 군사력은 최강이었다. 각종 마차와 말, 마병으로 최신식 군사 장비를 마련하였으며, 철저히 수비대와 용병 숫자를 증강하고 국경 지대나 주요 교역 도시에 군사 요새를 축성하고 확장하였다.

예루살렘은 동서남북 네 구역으로 나눠 종교적 중립을 유지해왔다. 사진은 서쪽 유대인 구역에 모여 밤새 율법 공부를 끝낸 뒤 해돋이를 맞이하고 있는 유대인들. 다니엘 마예스키 작품.

‘예루살렘’ 뜻은 평화의 도시

솔로몬은 힘을 믿고 지혜를 버렸다. 예루살렘의 중립성을 깨뜨리고 만 것이다. 자신의 명성과 힘을 강화하기 위하여 노역을 동원하던 중 지나칠 정도로 편향된 친-유다 정책을 폈는데, 대부분의 부담을 북쪽에다가 지우고 자신의 친족인 남쪽은 배제하였던 것이다. 솔로몬의 편향적 정책으로 인해 북쪽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가 죽자 북쪽 사람들은 그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예루살렘 정부의 부당한 정책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요구를 듣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왕궁의 두 보좌진에게 조언을 구했다.(열왕기상 12장) 어르신들로 구성된 보좌진은 북쪽의 요구를 들어주어 예루살렘이 중립을 유지하길 간언했다. ‘지혜롭게’ 결정하여 오랫동안 나라를 평온하게 유지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젊은이들로 구성된 보좌진은 북쪽의 요구를 들어주기는커녕 더 탄압을 하자고 했다. ‘힘’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결국 르호보암은 지혜보다는 힘을 선택했고, 그 결과 나라는 분열해 버린다. 북쪽이 솔로몬의 아들과 예루살렘을 버리고 독립을 한 것이다. 예루살렘이 중립을 어긴 순간, 공존의 협약은 깨졌다. 무모한 힘을 의지했던 르호보암과 젊은 보좌관들이 북쪽 사람들에게 전한 외교 서한은 이랬다. “내 새끼손가락 하나가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 (열왕기상 12:10) 한마디로 내 팔뚝이 엄청 굵으니 까불지 말라는 유치한 힘자랑이었다. 성숙하고 지혜로운 외교적 전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그 뜻이 ‘평화의 도시’다. 아랍권에서는 이 도시를 ‘알쿠즈(al-Quds)’ 라 부르며 그 뜻은 ‘거룩’이다. 부디 그 이름 값 할 날이 오기를.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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